학원이라고는 학교 앞 종합학원입시학원과 대구혜화여고 출신은 당최 모를 수 없는 우방독서실만 왔다 갔다 하던 학창 시절이었다.(펼쳤던 책장보다 깔깔댔던 웃음이 더 넘쳤던 듯하지만)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호떡을 굽더라도 서울에서 구워야겠다’는 막연한 동경에 "졸업하면 기필코 상경한다"는 막무가내 꿈을 품었다. ‘등록금 싼 경대(경북대)나 나와서 (여긴 뭐 아무나 가냐마는..;) 시집이나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수능 점수에 맞는 서울권 모 대학들에 모조리 원서를 다 내 마음대로 다 집어넣었다. 나중에나 알았지만 원서를 넣는 데도 컨설팅해 주는 곳이 있다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이 또한 19살짜리 혼자서 용기가 얼마나 대단했던 건지.
다행히 모 여대 한 곳에 붙였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여중 여고에 이제 또 여대라니, 점수에 맞춰 대충 넣었던 곳이라 과도 마음에 들지도 않았던 터라 4년간 그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더구나 그걸 전공으로 생계를 위한 취업 전선에 나선다.?!
무슨 오기가 또 붙었는지. 그토록 싫어하던 공부를 다시 해보기로. 그렇게 재수를 결심했다. 사회로의 첫 발을 내딛으려는데 되돌아보니 그리 최선을 다해보지 않았다는 미련이 남았던 게다. 이대로 어른이 되면 후회할 것 같았다.
고3 시절 수포자, 물포자였다. 우리 때는 언수외, 언사외 뭐 이런 전형이 있었는데 난 왜 도라이던건지 뭐가 그리 당당했던 건지 수학을 포기하고 그 무시로(경사가 심해 걸으면 다리가 '무'가 된대서 무시로)에서 홍정석 님의 <수학의 정석>을 단돈 3천 원에 팔아 그대로 떡볶이를 사 먹으러 샀다. 그것도 모자라 “언사외 전형으로 중앙대를 갈 것”이라며 뭐가 자랑이라며 미친 소리를 해댔던 나… 그렇게 수학의 저주는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안 했던 수학 공부를 하니, 제로 베이스에서 성적이 오르는 게 당연했고 문과생이 언어보다 수학 등급이 더 잘 나와버리는 공교로운 일이 발생해 버렸다. 뼛속까지 문과생이었던 나는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당시 메타인지가 떨어졌던 터라 점수에 취한 나머지 ‘교차지원’이라는 도른 짓을 해버렸고, “삼수는 없다”는 과감한 결정에 지원 첫날 최소 30점 모조리 공대로 하향 지원을 했다. 만약 붙었다면 공대 선영이가 아니라 공대 김연지가 나왔으려나(이거 알면 최소 80년대생) 그렇게 수학의 정석 저주는 대학 대신 삼수학원 등록으로 이어졌다.
'정녕 내 인생에 대학은 없는 건가' 남들은 쉽게만 대학에 가는 것만 같은데. 서울에서 재수를 하는 동안 특히 내 또래 여자 아이들이 봄내음 가득한 차림에 전공 서적을 옆에 끼고 대학교 이름의 역에 사뿐히 내리는데, 하필 나 때는 또 몸통만 한 문제집이 유행하던 때라 운동복 차림에 가방에도 들어가지 않던 그 문제집을 떡하니 품고 다니면서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과 김종국의 <제자리걸음>을 들으면서 1년을 또다시 꾸역꾸역 버텼다.
지나고 보면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고. 다 지금 이렇게 내가 잘 되려고 대학을 다 떨어지는 경우도 참 드문 케이스인데 그때부터 난 어려운 걸 해냈구나 싶다.
사회 초년시절의 시련은 크게 네 가지 교훈을 줬다.
첫 번째.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운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노력해도 계획한 대로 될까 말까인 게 인생인데 노력 없이 다가오는 기회? 절실함이 쟁취하는 성공? 그건 독이 든 성배가 아닐까 생각한다.
두 번째.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반드시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 하라면 못할 만큼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결과가 어떻든,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됐다. 그 기회로 내가 성장했다면 나중에 어떤 ‘의미’로든 생각지 못했던 형태로 어떻게든 돌아오더라. 인생은 길기도 하지만 얄궂은 게 또 인생이더라.
세 번째. 시간을 아껴 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같은 공부를 세 번 하는 동안, 남들보다 뒤처졌단 생각에(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뭐가 그리 혼자 조급했는지 ㅜㅜ ) 대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었고 시간을 정말 아껴 썼다. 돈은 언제든 다시 벌 수 있지만 지나간 시간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이때부터 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쓰면서 모닝레시피 다이어리가 탄생한 된 것도 있다.) 개인적인 이슈도 있으면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하면서 새벽 예배를 일상화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매 순간 ‘후회를 하지 않으려’ 한다. 일이든 관계든 어떤 상황에서든. 물론 살면서 아쉬움이 아예 없을 순 없겠지만 나중에 돌이켰을 때 ‘~하지 말걸. 그때 ~할걸’ 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
후회라는 게 남아서 다시 기회가 오더라도 그땐 처음보다 잘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재수는 선택이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삼수를 했던 것처럼. 그래서 어떤 기회가 오면 당장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드는 편이다.
그리고 후회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 두 번 하라면 못할 정도로. 후회도 미련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결과가 설령 좋지 않더라도 승복할 수 있다. 어떻게든 의미 있게, 가치롭게. 나답게 돌아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