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빈]이 좋아서

우리들의 격리시절 11

by 정연진

한 달 사이 TV드라마를 꽤 보았다. 태블릿이나 PC로 아무때나 봐도 될 일이었지만 영화관 나들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상에, 화면이라도 가능한 커야 하지 않겠는가.


일주일에 2회씩(마치 중고등학교 과외 시간표같은 저녁 타임 모듈!) 방영하는 새 드라마들을 기다린다. 컨텐츠가 다양해진 예능들 사이에서도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같은 고유의 시간표는 아직 살아남아 있었다.


올 여름, 나름 소재가 다양하고, 연기력이 꽤 있는 탤런트와 배우들(이 두 개의 직업을 구분하는 기준을 모르겠다)이 나오는 드라마가 몇 있다. <악의 꽃>이 먼저 시작했고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같은 처음에는 그저 가볍게만 느껴진 제목들의 드라마, 그리고 기다리던 <비밀의 숲>도 시작했다.


젊은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젊은 예술가(여기서는 미술)의 이야기인 <내가 제일 예뻤을 때>는 사실 사랑이야기를 다룬 로맨스이지만, 주제를 이어주는 음악과 미술이라는 소재가 은근히 매력이 있다. 박은빈의 과하지(!) 않은 이미지와 목소리가 좋아서, 임수향의 묘한 눈빛과 연기력이 좋아서 골라 보고 있는데, 웬걸, 이 두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들이 점점 눈에 들어온다.

드라마 속 채송아가 바라보는 곳에 박준영이 있다. 장면 사진 -에블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김민재는 진짜 피아니스트같다. 한 때 좋아해서 성탄절 공연까지 보러 갔던 김정원과 똑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마치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같은 세세한 동작들이 있다.


드라마를 통해 음악인들이 겪어야 하는 프로페셔널한 앞모습과 인간으로서의 뒷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예술을 업으로, 또는 취미로도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예술하는 사람들, 특히 음악하는 사람들은 멀리서만 보아도 참 멋진 존재들이다!


보고 있으면 음악가들의 생애에 얽힌 이야기들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젊은 피아니스트 '김민재'가 들려주는 음악은 신기하게도 나같은 클래식 바보의 귀에도 ‘아름답게’ 들린다. -김민재는 여기서 현실 피아니스트 같다! 숨어있던 연기천재인가...


올해 초였던가, 박은빈이 연기한 <스토브 리그>를 아주 흥미롭게 보았다. 4월 경, 자가격리를 해야했을 때 <스토브 리그>를 돌려 보았었다. 일부러 이런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박은빈은 이번 드라마에서도 약간은 고군분투하는 직장인이다. 야구라는 스포츠 장르에 이어, 예술 재단의 인턴을 연기하는 배우 박은빈은 이제보면, 갖가지 직업을 넘나드는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마치, 몇 개의 직업을 거치고 있는 보통의 20대를 그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예를 들어, <청춘시대>에서는 학보사 기자였다. 그 기자가 졸업 후 드림즈의 야구단의 직원이 되었다가, 전공을 바꿔 입학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예술재단의 인턴 직원이 된 것 같은 착각. 박은빈 스스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할 수 있어 좋은 기회이겠지만, 과하지 않은 연기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렇게 여러 역할들을 잘 해낼 수 있게 하는 도구는 아닐까. (아, 물론 소속사가 '알아서 잘 할테니' 연예인 걱정은 할 필요가 없지만.)


어쨌든 박은빈에게는, 이 놈(!)의 격리 시절- 2020년의 봄여름, 아니 가을까지-이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의 시절'처럼 좋은 기회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은빈이 좋아서 보기 시작했는데, 점점 김민재가, 피아노가 좋아지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의 이미지만 기억하고 있던 내게 김민재의 성장은 참, 할말을 잃을 정도이다. 굵직한 작품에서 이미 탄탄하게 내공을 쌓았다. 혹시 김민재가 원래 피아니스트였나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더 많은 배우들이 한 작품을 소화하더라도 이렇게 '진짜같은' 연기를 보여주면 좋겠다. 배우 '박은빈'을, '김민재'를 잊고, 그들이 연기하는 '채송아'와 '박준영'으로 착각하게 하는 젊은 배우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음, 박은빈과 김민재 사이에서 나도 이제 삼각관계다. 그러고 보니 이 드라마의 연출가, 참 대단한 것 같다. 박은빈 혼자서 끌고갈 것이라고 예상됐던 드라마에 은근한 무게감을 실어 뒷심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계절의 오행](2023)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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