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연진 Dec 14. 2023

"무럭무럭 자라거라."

14 DEC23

  영문학이 그리스로마시대의 신화에서부터 세계사, 서양의 철학과 기독교의 기반 위에 세워진 광활한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고 무작정 입문하게 되어 버리고도, 시간이 꽤 지나서야 나는 내가 어떤 사고를 친 것인지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영문학은 그러니까, 그리스로마 신화는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고, 세계사와 철학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며, 동시에 기독교의 역사에다 외국어 회화나 번역 능력 역시 어느 정도는 갖춰야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이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나는 대학원에 입학할 때까지도 몰랐다.


  강 선생님의 권유아닌 권유로 석사과정에 입학했지만 직장에도 다니던 때라 사실 첫 학기는 수업만 겨우 따라갔을 뿐이었다. 따로 짬을 내어 수업 외의 자료와 텍스트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 정도로 그 때 나는 영리하지도, 영특하지도 못했다. 대학원생이라면 으레 필독해야 할 고전 리스트가 여전히 미완의 리스트로 남아 있으니, 더이상 말해 뭐하리.


  이 곳이 학부생이었을 때와는 또다른 새로운 사회라는 것을 실감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그 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힘든 과정일 수도 있으니 잘 버텨보라'는 말씀을 간접적으로 해 주신 지도교수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그 지도교수도 전적으로 내 편일수만은 없고, 스스로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다는 것을 석사과정 첫 학기에 어렴풋이 느끼긴 했다.


  주변에서는 많이 알고, 또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느끼겠지만, 나는 강 교수님의 권유와 지지로 대학원에 입학했으나 여차여차한 스토리로 강 교수님의 논문 지도 학생이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강 교수님께서는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꽤 많은 부분에서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강 교수님과 석사 논문을 위한 연구주제와 관련해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언젠가 교수님은 이메일 끝에 따뜻한 한 마디를 덧붙여 보내신 적이 있다. 소로우를 좋아하든 프로스트를 좋아하든, 전혀 다른 공부는 아니니 결국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리고, 그 이메일의 마지막에 덧붙여진 한 문장.


 '무럭무럭 자라거라.'


  수업 시간마다 아주 어려운 주제를 놓고 토론하게 하셔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있는 분이셨지만, 수업 외의 장소에서는 아주 위트가 넘치고 마음 따뜻한 분이셨다. 교수님의 이런 모습을 아는 이는 아마 지금도 많지 않을 것이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동료 선생님들이나 선배들은 그 분이 논문지도에 있어서는 얄짤없다며, 매우 까다로운 선생님으로 입소문을 내곤 했다.


  저명한 교수자로서의 선생님의 모습 이면에, '무럭무럭 자라거라.'라는 따뜻한 격려를 해 주시는, 나무와 하늘을 사랑하시는 자연인으로서의 모습도 있다는 것을 동료 선생님들이 알았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강 교수님의 그 한마디를 나는 지금까지도 종종 그랬고 오늘도 다시 새겨 본다. 이제 더이상 20대도 아니고, 지도교수는 물론이고 강 교수님도 곁에 없지만,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이 자리에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두시고는 수년간 묘목으로 자라도록 도와주신 이 선생님들께 언제나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작은 나무도 어느 시기부터는, 땅의 기운만이 아니라 하늘과 바람과, 그리고 나무 그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그 때 그 스승의 귀한 말씀은 이제 나 스스로에게 내가 해 주어야 하는 격려의 의미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연진아, 무럭무럭 자라거라."


 


  

매거진의 이전글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