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끝까지

[계절의 오행](2023)에 실린 글입니다._김광민 [학교 가는 길]

by 정연진

피아니스트 김광민 솔로 말고도 노영심, 그리고 손열음과의 협연이나 방송에서의 연주 영상도 꽤 잘 알려진 이 곡은 언젠가 어느 공연에서 연주자가 앙코르 곡으로 들려줘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어렸을 때였는데 제목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고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었다. 나중에 TV로 연주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이 음악을 만든 김광민이 꽤 중년의 아저씨라는 것을 알고는 ‘아니 저런(!) 분이 이렇게 통통 튀고 밝은 동요 같은 리듬을 작곡했단 말인가,’ 어린 마음에 놀랐던 기억.


좋아한지는 한참인데 나는 이제야 이 곡의 악보를, 그것도 초보자의 연주 버전으로 시도해 보았다. 우연히 칼림바 악보집을 본 적 있는데 여기에도 쉬운 버전으로 실려 있는 것을 보았었다. 연주자들을 보니 이 곡의 몇 가지 변주도 꽤 좋고 가능한 것 같던데 이 악보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지, 클래식 거장뿐 아니라 김광민 같은 인물도 대단하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참 대단하다, 아니 아니 모든 창작자들은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리듬을 이미 알고 있어서 악보만 잘 읽고 빠르게 연주하면 되는데, 나는 아예 손가락 연습이 안 되어 있는 왕초보 수준이다 보니, 건반을 누르는 손이 무겁다. 당연히 소리는 고르지 않고 손가락 힘보다 손목과 팔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차근차근 거쳐야 할 단계들을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조금 빠르게, 적당히 이론으로 배우며 지나가고 있었는데, 무리였나 보다.


익숙한 리듬이 가끔은 마음만 급하게 만드는 단점도 있는 것 같다. 경쾌한 리듬은 오히려 더 잘, 정확히 연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도도 빨라야 하지만 건반을 정확히 눌러야 내가 알던 딱 그 느낌의 <학교 가는 길>이 된다. 천천히 또는 건반을 반만 대충 누르면 맛이 거의 안 난다.


아, 모든 것의 단계들은 잘 짜인 과정들이었구나. 막 바이엘을 마친 자가 도전하려는 이 악보들은 들쑥날쑥, 하다 말다, 대충대충 하려는 마음 말고, 초등학생이 방과 후마다 짜여진대로 한 시간의 연습시간을 버티고 참아가며 완성해 가는 단계, 단계의 인내와 성의만큼의 성실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구나.


재미로 대충 하려다가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삶에서는 어떤 사소한 일도, 그것이 혹 오랜 로망 끝에 도전하고 있는 취미라 할지라도, 대충 해서는 안된다는 지혜와 순리를 배운다.


그래서 <학교 가는 길>은 건반 끝까지.


2022/ [캐논까지 느릿느릿]/ [계절의 오행](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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