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오행](2023)_격리시절
오래전 한 친구는 종종 이메일로, 손글씨로 편지를 써 주곤 했다. 학연, 지연 그 어느 끈으로도 연결되지 않는 사이였던 우리.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생각의 깊이가 남다른 친구였는데 나는 친구가 말하는 철학자와 작가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이름만 겨우 알아보거나 알아듣고는 같은 수준인 척만 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종종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지금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나는 친구에게 더 많이 관심을 두었어야 하고, 이야기를 경청했어야 하며, 진지했어야 했다. 그때 나는 너무 무지했어서 친구가 선물해준 책들이 얼마나 귀한 것들이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때 나는 이공계에서 인문계로 진로를 바꾸고 새 학교에 적응한답시고 바쁜 척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친구는 대학원 석사 논문을 통과하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때였다. 학부생이던 나보다 훨씬 더 바빴을 것이다.(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사회적 나이로는 대여섯쯤 많았을 것이다.)
나의 책꽂이에는 백석의 시나, 기형도의 시집, 한나 아렌트, 그리고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이 있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 책들을 정독하거나 탐독하지 못했다. 그저 친구가 메모해 준 책 표지의 멋진 사인과 서문 정도만 훑어보고, 그들의 이름을 아는 척만 해댔을 뿐. 눈앞에 산재한 공부 거리들을 안고 쓸데없는 일들에 눈과 마음을 쓰느라, 삶의 중요한 스펙트럼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목표에서 멀어져 좌표를 잃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공부는 깊이 할수록 더 좁은 분야에 대해서만 알게 된다더니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나 보다. 한동안 친구와 자주 만났는데도 우리는 접점이 거의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한국문학은 거의 접한 적이 없었고 관심이 없기도 했다. 후에, 인문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도 한국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름의 개인적인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대학원의 분위기 탓도 있기는 하다. 가령 영문학 분야에서 영어학전공이냐 영문학 전공이냐에 따라 극과 극의 교육과정을 접하고 읽고 공부하게 되어서 결국 수년 후에는 언어학 석박사와 문학 석박사라는 아주 별개의 학위를 받게 된다.
더욱이 순혈주의가 강한 한국의 교육계에서는 문학 전공자가 어학수업을 듣거나 그 분야의 연구논문을 학제 간 연구로 하고 싶어 한다고 할 때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까지도 있었다. (지금 학제 간 연구나 융합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정책적이고도 의도적인 것이지만 인문학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아니라고 감히 고백은 해 보고 싶다. 물론 국문학이나 영문학이 그리 멀지도 않은 범주인데, 가깝지만 또 멀다.)
어쨌든, 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던 친구는 “다음에 더 자세히 들려주겠다”던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곁을 떠났다. 가끔, 친구가 남긴 이야기를 들춰보곤 하는데, 읽을 때마다 다시 볼 때마다, 친구의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리고 먹먹하다. 그때는 몰랐고 보이지 않았던 친구의 진심과 관심들… 한 번도 찾아본 적 없었던 친구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십년이 넘은 학위논문이지만 아직도 전공분야에서 나름 잘쓴 것으로 평이 난 친구의 논문도 찾아본다. 그리고 시인 백석과 기형도, 김수영, 작가 김영하의 책들을 찾아본다. 아, 로자 룩셈부르크, 니코스 카잔자키스. 그때 친구는 이런 이름들에 관심이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어떤 환경을 접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길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인문학 소양과 수준으로 본다면 친구와 나는 스펙트럼의 양끝에 위치했을 것이다, 최상위와 최하위.
신기하게도 친구는 서양철학과 문학과 시인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고, 과학기술사에 대해서도 적당히 알았다. 그러면서도 학교라는 직장에서도 두리뭉실 즐겁게 잘 섞일 수 있었던 친구. 송하는 20대 내 주변에서는 거의 유일했던 인문학도였다. 친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앞에 닥친 일과 시간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를 좀 더 다그치고, 잔소리로 긴장하게 해서, 좀 더 빨리, 세상을 알고 공부의 가치를 알게 해 줄 것이지… 이렇게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게 하다니. 친구가 잘못했다, 정신 못 차리고 “사는 대로 생각하던” 이십 대의 나를 좀 더 채찍질해 줬어야 했다.
한참이나 냉장고 문 앞에 붙여두었던 친구의 엽서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다. 친구의 필체가 남아있는 두꺼운 책 한 권은 재작년 미국에 들고 갔다가 두고 와 버렸다. 지나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송하에게 받은 책들은 모두가 오래 두고두고 읽어보고 들춰봐야 할 고전들이었다. 좀 더 빨리 깊이 읽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 더 알차고 깊어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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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다시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