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식

[계절의 오행](2023)_격리 시절 2

by 정연진

눈 앞에 놓인 “해야 할 일” 이 너무 큰 산처럼 느껴져 다른 일들은 다 제쳐두고 그 일에만 집중했던 때가 있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어떤 일을 우선하는지, 많은 해야 할 일들 중에서 어떤 일을 선택하고 어떤 일에 집중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관심 분야, 취미, 성향, 성격, 그리고 인생의 가치관까지도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어떻게보면 이것은 그냥 사람이 어떤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가와 같은 단순한 문제일수도 있겠다.

어느 시기에는 쓸 데 없을지도 모를 공부에 집중하게 된 적이 있다. 주변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데도 계약직으로 일했던 직장 업무에 집중하느라 야간, 주말 할 것 없이 일한 적도 있다. 학교에서 일할 때에는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마다 “귀찮게 일을 만든다” 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이런 경험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도 되거나 상사의 결제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일들, 또는 혼자서 해도 되는 “방콕” 스타일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 것 같다. 물론 혼자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우울감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던 시기에도 종종 연락을 해 오던 친구가 있다. 그와는 직장에서 만나지 않아도 되고, 가족이나 혈연과도 연결고리가 없었으며,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아야한다는 의무도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가끔씩 전하는 안부가 반가운 사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에게 원하는 것도 없고 마음에 부담이 없으니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이로 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고 있는지도.

한국에 돌아와(“집으로 돌아와”라고 써야 맞을텐데...) 몇 달간의 사회적 격리 생활을 경험하던 작년 가을에는 한두가지쯤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겼었다. 9월에서 11월까지는 두어가지 일에 더 신경을 썼다가 한가지는 아예 포기해 버렸다. 아직도 미종국 상태로 남아있는 일이지만, 마음이 허하다 보니 일도 사람도 코로나도 더위도 추위도.... 모두 그냥 싫어졌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 잠깐 급한 일을 해결하고 쓰려고 멈춰뒀던 일기장이, 오늘보니 어느 새 8개월이나 비어 있다. 2020년 가을부터 겨울, 2021년 겨울에서 봄은 내 인생에서 빠져 버렸다.

머피의 법칙(Murphy’s Law)를 다시 보면, 결국 일어날 일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수개월간 해결되지 않을 일을, 잠시 일기를 멈추고 그 일에 집중하면 될 것처럼 자신했다. 시간 앞에서 참 거만했다. 이 미개한 인간이 활동을 멈추는 동안에도 8개월의 시간은 이미 저만큼 앞서 가고, 나는 자연스레 다시 뒤처져있다. 아니, 지나간 시간만큼 일기를 다시 써 낼 수는 없으므로, 그냥 실패다.

친구(최ㅇㅇ)의 친구 로시(Rossy, 임의로 내가 지은 닉네임)가 안부 겸 소식을 전해 왔다. 두어가지을 새롭게 시작한 듯한 그녀는 아주 활기 있어 보였다. 앞으로의 행보를 미리 응원하며, 서랍속에 넣어 둔 지난 8개월을 찬찬히 다시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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