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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듀부 Aug 04. 2022

초고속 승진하는 법

초기 스타트업 3년에 내게 가르쳐준 것 (2)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승진을 원한다. 더 높은 보상과 지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니 말이다. 보통 대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같은 곳에는 승진에 관한 규정과 프로세스가 명확하여 일정 연차가 되지 않으면 아예 넘볼 수도 없다. 반면 스타트업은 승진 제도를 아직 마련하지 못한(혹은 안 한) 경우가 많아 오히려 승진 기회가 많다. 


나의 경우 스타트업 3년 동안 매니저-파트장-팀장-COO로 승진했다. 창업 멤버가 아닌 내부 구성원이 C-level로 승진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꽤나 빠른 승진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초고속 승진은 4가지 이유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1.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일을 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망망대해에 외로이 뜬 선박의 선원이 된 느낌이다. 파도가 너무 거칠어 항상 휘청대고, 선장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 명확히 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초기에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사업 방향성이 자주 바뀌는 경우 더 그렇다. 이 시기에는 조직 내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프로젝트나 사업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경험자가 없기 때문에,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상태다. 이때 주도적으로 내가 리딩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표에게 큰 신뢰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결국 해낸다면, 조직에서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내가 된다. 


내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우리 회사는 피봇을 해야 했다. 코로나가 터져 기존 사업방식으로는 가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업 쪽 직원은 3명이었는데, 대표가 신사업을 리딩할 PM을 지원받았다. 3명을 앉혀 놓고 신사업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예상되는 어려움들을 이야기하며, 누가 PM을 맡고 싶은지 물어봤다. 당시 나는 자원하지 않았고, 다른 동료가 자원했다. 나는 두려움이 컸다. 신사업의 성공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고, PM이 되면 갈려 나갈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PM으로서 밤낮없이, 주말 없이 일하던 동료는 심신이 너무 지친 나머지 몇 개월 뒤 퇴사를 결심했다(물론 이 케이스를 본보기 삼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존 PM이 퇴사 수순을 밟으면서 자연스레 나에게 많은 일들이 옮겨져 왔다. 우리의 신사업은 이커머스였는데, 온라인 쇼핑몰 구축부터 상품 기획, 소싱, UX/UI, 상세페이지, 물류, CS, 홍보/마케팅, 프로모션 등 처음인 모든 것들을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구글링도 해보고, 유튜브에서 영상도 찾아보고, 관련 서적을 읽고, 주변 아는 커머스 종사자에게 물어도 보고, 투자사에 멘토링 요청도 하는 등 사방팔방으로 방법을 찾아 하나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정말 'ZERO TO ONE'을 했다.


시간이 흘러 신사업이 조금씩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고, 새로운 직원도 2명 더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 신규직원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들의 R&R을 정하고, 프로세스를 알려주고, 질문에 답변을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PM으로 자원한 적은 없지만 실질적인 PM이 되어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 커머스와 관련된 일을 나보다 잘 알고, 잘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렇게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2. 나의 성과를 넘어 팀의 성과를 만드는 일을 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타고난 일 센스나 오랜 경력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10을 할 때, 15 정도를 해내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실력 좋은 실무자로 인정받는다. 


스타트업의 승진에는 일 잘하는 것을 넘어 더 필요한 것이 있다. 팀의 성과를 만드는 일이다. 일반 회사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진급 체계가 명확하여 연차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진급을 한다고 해서 팀장처럼 조직 내 특정 그룹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직책이 없는 승진은 의미가 없기에, 승진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의 자리로 옮긴다는 말과 같다. 나의 첫 승진은 '파트장'이 된 것이었다. 


내가 파트장이 되었던 시기 우리 팀에는 나 말고 다른 일잘러가 있었다. 나보다 회사에는 늦게 입사했지만, 나이도 경력도 더 많은 분이었다. 대표는 후에 이 분과 나 사이에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했지만, 내가 생각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팀의 성과를 만드는 일을 했는가'였다. 그분은 홀로 빛이 나는 분이셨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다른 분보다 퍼포먼스가 월등했고, 회사 생활도 원만하게 잘했다. 반면 나는 새로 들어오신 분들이 업무와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자료를 만드는 일을 했다. 업무 프로세스를 확립하여 어떤 누가 새로 들어와도, 프로세스를 따라서 일을 하면 문제없이 업무를 할 수 있게 기반을 마련했다. 스스로 내세울만한 수치적인 지표(예: 입점 상품 몇 개, 매출 몇 원 등)는 많지 않았지만, 다른 동료들이 KPI를 달성할 수 있도록 서포트했다. 그 개인들의 성과가 모여 팀의 성과를 올리는 데 기여한 것이다. 




3. 조직이 힘든 순간에 자리를 지켰다.


스타트업은 기복이 큰 조직이다. 일이 잘 풀리는 순간도 있지만, 어려운 순간이 더 많다. 특히 가장 힘든 순간은 핵심 멤버가 이탈할 때인 것 같다. 돈도 명성도 없는 작은 조직에서 가장 귀한 자원은 사람이다. 기술을 만드는 것도 일을 진행시키는 것도 모두 사람이고, 한 명 한 명이 막중한 책임을 갖고 일을 한다. 


2019년 입사했을 때부터 함께했던 3명의 올드 멤버들이 2021년 초 모두 퇴사했다.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었기에 붙잡을 수는 없었다. 약 3개월 동안 초기 팀을 구성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떠났다. 가장 타격이 컸던 것은 CTO의 이탈이었다. 팀에서 유일하게 우리 프로덕트의 신규 개발과 유지보수를 해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 사람이 없으면 구현을 할 수 없었고, 프로덕트에 문제가 발생해도 막아줄 수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사람들이 떠났을 때 팀은 꽤나 혼란스러웠고, 특히 대표에게 타격이 크게 왔다. 


나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팀에 합류하여 친구 같은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몇 안 되는 선배라고 할 수 있는 CTO가 떠났다. "그들은 떠나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도 했다. 나는 당시 떠날 이유가 없었고,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묵묵히 버텼다. 진행 중이던 신사업을 무사히 론칭해야 했고, 이 조직에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과를 적어도 하나는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좀 더 흘러 구성원은 충원되었고, 커진 조직의 규모에 따라 팀장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그리고 그때 팀장을 할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팀장이 되었다. 




4. 승진 희망 의사를 솔직하게 표현했다. 


신사업을 론칭하고 1년쯤 되었을 때 대표는 사업 부문 C레벨을 신규 영입하고 싶어 했다. 신사업은 어느 정도 시스템을 갖췄고 안정화가 되었으나, 성장을 부스트할 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표는 외부에서 전문성과 경력이 많은 사람을 데려오면 우리 팀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적임자를 찾기가 힘들었다. 세상에 뛰어난 사람은 많지만, 채식/비건 시장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이고, 그중에서도 우리 팀이 줄 수 있는 조건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미팅에 동석하여 후보자를 만나보기도 했지만 정말 모시고 싶은 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마음속 한 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만큼 회사에 헌신하고, 회사 히스토리 다 알고,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꿰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사업의 거의 모든 영역을 내가 이끌고 있는데, 이미 C레벨에 가까운 책임과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을 이야기하면 "네가 대표야? 다 하네?"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나는 아직 30대 초반이고 경력이 길지 않은데, C레벨이 될 수 있겠어? 대표도 나를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할 거야." 


이렇게 상충되는 두 생각 사이에서 고민하기를 몇 달, 계획하지 않게 포지션 관련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이 생겼다. 의외로 대표는 내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줬고, 바로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다. 대표가 원하는 이상적인 C레벨에 내가 맞지 않아 염려된다는 이야기에, 대표는 완벽히 일치하는 사람은 어차피 없고 자리에 맞춰 채워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COO(사업운영총괄)이 되었다. 




스타트업에서 승진의 과정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내가 걸어온 길은 누군가 알려주거나 만들어 놓은 절차를 따른 것이 아니었다. 내 역할과 업무에 충실했고, 조금 이를 수도 있지만 더 높은 책임과 역할을 원했고, 이를 얻기 위해 더욱더 노력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초고속으로 평사원에서 경영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경영진에 자리에 오르고 나니 어려운 점이 더 많았다. 나의 리더십에 대해 도전받기도 했고, 성과에 대한 압박도 더욱 커졌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목표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시기도 있었다. 조직 내에서 대표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편해지기는 커녕 더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지금도 많이 느낀다. 그렇지만 나의 한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이상 승진할 곳이 없는 위치에 올라도, 성장할 여지는 무한대다. 앞으로는 내 실력의 성장을 통한 성과만으로 세상에 나를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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