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2023년 9월 19일
애들을 태권도 학원에 데려다준 후, 집으로 갔다 다시 나오기엔 시간이 애매하니 학원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주문하는 곳 맞은편에 자리를 잡아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며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직원 여러 명 중 한 명이 주문하는 곳에 선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여기에 배달하시면 안 돼요! 여기는 배달받아주는 곳이 아니잖아요!"
아주머니는 직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덤덤하게 대답했다.
"단골인디, 좀 받아줄 수 있지. 여기 동네 사람한테 그걸로 그래야 되겠어? 여기. 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소."
직원은 단호했다.
"여기는 영업장이에요! 여기로 배달하면 안 돼요!"
아주머니는 카드를 내밀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태도에 직원은 목소리를 더 키웠다.
"아시겠죠? 여기는 배달받아주는 곳이 아니에요! 배달하지 말라고요! 여기는 카페잖아요! 다음부터는 절대 안 받아줄 거예요! 여기로 배달시키지 마세요!"
아주머니는 직원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지 아무 말 없이 내 뒷자리에 앉았다.
잠시 시간에 흐른 뒤, 다른 직원이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커피 나왔습니다!"
아주머니가 커피를 받으러 가자 단호한 직원은 한번 더 주의를 줬다.
"여기로 배달시키면 안 돼요!"
아주머니는 이제부터 싸울 기세로 다다다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한 번만 말하면 되제, 몇 번을 말해! 아주 잔소리를 몇 번을 하냐고! 아니 내가 여기 커피 팔아준 게 몇 잔인디! 단골인디 그래야 쓰겠어? 좀 받아줄 수 있지! 그것도 안 되냐고! 내가 커피 여기서 많이 마셨다고!"
직원은 아주머니 말에 지지 않았다.
"여기는 카페라고요! 배달 받아주는 곳이 아니에요! 저번에도 여기로 배달 시키고, 이번에도 배달 시키고! 여기로 하지 말라고요! 배달하신 분이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왜 여기다 시키냐고요!"
"단골인디 그럴 수 있지! 어른한테 끝까지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거 봐봐! 내가 여기서 날마다 커피 팔아주고 그랬는데!"
"여기는 카페라고요! 저번에는 피자 배달시키고! 오늘은 샌드위치 시키고! 배달 안 받아준다고요!"
"받아주는 게 뭐 어때서! 뭐 어때서! 내가 그것도 못 시켜?"
"영업 방해죄로 신고할까요?"
"해봐, 어디! 해봐! 얼른 신고해! 내가 여기 단골인디! 배달도 못 시켜?"
아주머니는 직원과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카페는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이 소란이 끝이겠거니... 다시 유튜브 보는 것에 집중하는데...
어느새 경찰이 주문하는 곳 앞에 서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직원은 살짝 흔들리는 눈빛으로 경찰을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저번부터 계속 우리 카페에 배달을 시켜요! 그러지 말랬는데 큰 소ㄹ"
아주머니가 끼어들었다.
"아니 내가 커피를 여기ㅅ"
경찰이 끼어들었다.
"여기 말 그만해요!"
직원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저번에는 피자, 오늘은 샌드위치를 시켰어요! 방금 배달아저씨가 계속 전화했는데도 안 받아서 여기서 기다리고 그랬어요!"
아주머니 항변했다.
"내가 여기서 아메리카노 날마다 한잔씩 마셨는데! 그것도 못 받아줘요? 아니 커피 마시다가 피자도 먹으려고 시킨 게 뭐 잘못이라고! 내가 여기 단골이여! 단골! 단골이라고! 돈을 여기다 얼마나 썼는데! 그것도 배달 못해? 어? 서구청장한테 내가 전화해블거여!"
직원이 소리쳤다.
"여기는 카페라고요!"
"아주 몇 번을 말한가 몰라! 한번 말하믄 되제 아주 계속 말해! 지 몸뚱이만큼 말한당께!"
유튜브 보는 척하며 듣고 있던 난, 아주머니 말에 잠깐 숨이 멈췄다. 다른 테이블 손님들도 숨이 멈췄다. 다른 직원들도 숨이 멈췄다.
옆에서 듣고 있던 경찰도 당황했다.
"인신공격 하지 말고 말해요! 이제 둘 다 그만해요!"
굳센 직원 지지 않았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굴어요!"
"저 봐봐. 어른한테 말하는 거 보라고!"
"두 분 다 그만하라고요!"
"어른답게 굴라고요!"
"어른한테 말하는 것 좀 봐봐!"
"둘 다 그만해요!"
돌연 아주머니는 태연하게 내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경찰이 따라갔다.
"직원한테 그렇게 하지 마세요! 여기 직원한테 그러면 안 돼요!"
"내가 뭐 어쩠다고 그러요? 내가 뭐 잘못 말했소?"
나는 이제 애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대화하는 중인 경찰관과 아주머니를 지나치며 씁쓸한 마음 가득 품고 카페를 나왔다.
잠시 뒤 애들을 데리고 나와 카페 앞을 지나며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카페를 흘긋 쳐다보았다. 직원은 카페테라스에 서서 울먹이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배달시키지 말라고 말한 게,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
아주머니는 방금 내가 언제 싸웠냐는 듯 표정 변화 없이 휴대폰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카페 자리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는 그 자리를 지킴으로서 자신의 갑질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긴 다리를 꼬고 새끼손가락만 위로 올려 나머지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잡아 빨대로 커피를 쪽 빨아 마시는 그 모습이 고상하기는커녕 상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