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만세

"부르지 마소! 부르지 마!"

by 연주

2025년 5월 15일


퍽!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에서 눈을 떼 고개를 들고 소리 난 곳을 응시했다. 애들 학교 정문 앞 가장자리 바닥에 작디작은 까만 몸이 옆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검붉은 액체가 바닥에 흐르고 늙은이의 축 쳐진 피부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반사적으로 까만 몸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외쳤다.

"119 부를게요!"

나의 간절한 외침은 그에게 어떠한 불안을 주었나 보다. 그는 바닥에 웅크린 채 다급하게 말했다.

"부르지 마소! 부르지 마!"

"네?"

"부르지 말라고! 부르지 말랑께! 나 괜찮으니까 부르지 마소! 여가 집 앞이여! 금방 가니까 부르지 마!"

그는 일어서려 꿈틀대며 얼굴을 바닥에 묻고 몇 번이나 말했다. 부르지 마소... 나 괜찮다니까...

"알았어요! 안 부를게! 일어나 보세요!"

그의 양 겨드랑이를 두 손으로 꽉 잡았고 동시에 그는 내 종아리를 잡았다. 어엇! 아기를 키워 본 경험을 살려 이 작디작은 그의 몸을 슝!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돌덩이 같은 그를 당겨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팔과 다리는 그들의 힘을 빌려 지탱하고 일어나 앉을 수 없을 정도로 고장 난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내 종아리에서 손을 뗐다. 나도 그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는 가까스로 자신의 어깨와 팔꿈치를 이용해 스스로 앉을 수 있었다. 코에서는 피가 흘러 인중이 더럽혀져 있었고 왼쪽 광대뼈에서부터 턱 아래까지 끈적끈적한 피 덩어리는 한데 엉켜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머리를 뒤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찰나 고민했다. 다친 부위를 지혈해야 하는데... 휴지가 필요한데... 아까 태권도 학원에서 딸내미를 도복으로 갈아입히고 챙겨둔 옷이 생각났다. 가방에서 딸의 연보라색 맨투맨티를 꺼냈다.

"이걸로 막으세요."

"괜찮여. 여 종이 있을 것이요. 주머니에 있을 것인디."

"여기 광대 쪽 찢어졌어요. 여기서 피나요. 여기."

딸 맨투맨을 접어 그의 광대뼈에 대었다. 그는 맨투맨을 꾹 눌러 피를 막았다.

"괜찮은데... 고맙소... 나는 이제 괜찮으니까 갈 일 가셔도 돼요. 고맙소~"


학교 수돗가에서 크록스에 신발을 씻고 다시 정문으로 가보니 그는 가고 없었다. 바닥에 말라붙은 끈적한 피와 그의 간절한 외침 '부르지 마소'가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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