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표 교육 할 거야!
한창 코로나가 여기저기 쑤시고 다닐 때, 우리아들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아이들 교육에 손 놓고 있던 내 머리 위에서 고민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생을 둔 대한민국 학부모라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일 것이다.
나의 아이, 무슨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할 것인가. 학원을 보내야 되나? 보낸다면 무슨 과목 학원을 보내야 하는 거지? 수학학원과 영어학원은 피할 수 없이 꼭 보내야겠지? 전세 대출 이자를 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싼 학원비를 감당 할 수 있으려나?
이미 우리아들은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꼭 다녀야 한다기에 고민 없이 보낼 수 있었다. 태권도 한달 주 5회 12만원. 피아노 한달 주 5회 12만원. 총 24만원. 아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학원비는 기꺼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수학과 영어 학원비까지 더해지면 한달 100만원 가까이 학원비로 지출해야 하기에 외벌이 우리 남편 어깨가 무너질 것 같아 무서웠다.
학원에 관련된 정보가 필요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내가 과장되고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마주치면 인사만 까닥하는 엄마들 무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대화를 걸었다.
“혹시 요즘 수학이나 영어 학원비 얼마인가요? 이 근처에 괜찮은 학원 있나요?”
육아 동지 엄마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나에게 정보를 주었고, 다들 광주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봉선동으로 아이들을 보낸다고 한다. 아....부럽다.. 어쨌거나 수학 한달 평균 20만원정도. 영어는 한달 평균 25만원.
절로 얼굴이 찌뿌려졌다. 뭐 이리 비싸? 그것도 주 3회란다. 과연 우리집 사정에 이 학원비를 감당할 수 있으려나? 생각해보자.
전세대출 이자 더하기 아들 학원비 더하기 공과금 더하기 식비 더하기 경조사비 더하기 이것저것.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내가 아들 학원비를 벌기 위해 일을 나가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내가 일을 나가면 애들을 봐 줄 사람이 없다.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구인하는 곳은 찾기 힘들고, 그들이 원하는 시간대에 내가 일을 하게 된다면 아직 7살인 남자아이와 4살인 딸아이는 단 둘이 집에 있어야 한다. 아이들만 집에 있다고? 생각만 해도 위험했고 끔찍했다.
차분히 다시 생각해보았다. 어차피 나는 주부요, 내 할 일은 아이들 케어하는 것이니 아이들에 관련된 것은 다 내 할 일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이제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럼 나도 아이들 공부를 책임져야하는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그래! 내가 가르칠래! 까짓것 해보지 뭐, 하지만 주위에서 숱하게 했던 말이 엄마가 공부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이와 엄마 사이가 틀어지기에 딱 좋다 란다. 한 문제 틀렸다고 등짝 한 대, 왜 이해 못하냐고 등짝 두 대, 바른 자세로 앉아 문제 풀라고 등짝 세대 때리기 딱 좋단다.
하지만 남의 얌전한 자식의 희망의 끈은 놓을지언정 내 망나니 자식 희망의 끈은 놓기가 힘든 게 부모이지 않은가?
내 처신만 잘 하면 엄마표 공부로 인해 자식과의 관계가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란 느닷없는 희망이 생겼다. 돈도 아끼고 아이들과 더 친밀해지고. 너무 좋은데?
나는 활짝 열린 귀를 투명 싸개로 닫아보기로 했다. 투명 싸개로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들을 내칠 것이다.
엄마표 공부를 해보기로 결정하고 나니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학원 강사였으니 중등 수학까지는 어찌어찌 할 수 있을 것 같아. 음...다른 과목들은 문제집만 풀리면 해결 되겠지? 그럼 영어는 어쩌지?’
역시나 영어가 가장 큰 문제였다. 영어시험 점수 20점도 받았던 내가 과연 영어를 가르칠 수 있을까?
집 책꽂이에는 엄마표 교육 열성 엄마였던 둘째언니가 준 아이들 영어책이 가득했다. 평소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던 영어책 중 한 권을 빼들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내 혀는 단단히 경직되어 있고 목에 힘을 준 채 읽었더니 성대가 살짝 뻐근했다. 글 밥이 적은 영어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내 혀와 성대는 삐그덕 거렸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리는 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기에, 혀와 성대는 이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새삼 나의 주특기 무작정 들이대고 보기는 큰 장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벌써부터 내 머리 위 부푼 풍선안의 책상에 앉아 있는 두 남매는 영어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더니, 수학 개념 설명 한번 들었을 뿐인데 많은 문제를 술술술 풀어 나갔다.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거만한 미소를 짓는 나도 보이네.
아이들을 재우려 누웠다. 아들은 내 오른쪽, 딸은 내 왼쪽에 누웠다.
내 손에는 영어책 두 권이 들려있다. 학원비를 아껴보자는 굳은 의지가 책을 잡은 내 손가락 끝에 도사리고 있었다. 난 비장하게 머리위로 책을 높이 들었다. 제목은 seven stars.
“엄마? 영어책이야? 미국말? 영어책 읽어줄라고?”
아들은 호기심어린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고, 딸은 새로운 상황에 꺄르르 웃었다.
나는 제목을 읽었다.
세븐 스타쓰. 쎄븐 쓰딸ㄹㅆ 이 아닌 세븐 스타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