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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양 Jun 13. 2023

[2화] 버려진 아이

이해받지 못한 마음

부모님께서 저에게 화풀이를 하기 전에 어김없이 이상한 직감이 찾아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는 그 느낌



그 누구에게도 우리 집에 있는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고,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언니와 남동생도 각자의 무게를 견디기 급급했다는 걸 알기에 굳이 제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저만큼의 감정의 무게를 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누군가에게 제 속마음을 표현하다가 나약한 제 자신을 보며 찌질한 저를 탓할 수밖에 없었기에 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내 감정은 누군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하찮은 것이기 때문에 쓸모없고 숨겨야 하는 창피한 것이 되었어요. 나를 숨겨야만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정상적이고 멀쩡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제가 중학생이 되고 시간이 흘러 엄마는 하루하루 원래 자신의 페이스를 회복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픈 몸을 유지하면서요. 때로는 웃고 때로는 일상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남들이 보았을 때 아무런 문제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듯 보였을 겁니다. 엄마가 일상을 회복하는 듯 했지만,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엄마는 때때로 힘든 자신의 처지와 병든 몸의 상태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넋두리를 저에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엄마가 시어머니에게 당했던 악독한 말과 행위를 반복적으로 저에게 토로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6인분 아침식사에 아빠의 가족들의 점심 도시락 6인분을 손수 다 싸셨고, 갑자기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모든 그릇을 다 꺼내서 다 씻고 닦으라고 일방적으로 명령을 하셨으며, 시어머니의 말을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 매우 차갑고 매섭게 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죽으면 썩을 손을 일하는데 왜 아끼냐”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80년대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고달픈 시집살이를 하셨거죠. 엄마는 그 때 혼자 아무 말도 못하고 속으로 삭히셨다고 합니다. 그게 며느리로써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아빠의 가족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트라우마를 입은게 분명했고 긴 시간 그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반복재생하서 스스로 비참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봐도 할머니의 표정과 말투는 비호감 그 자체였습니다. 저도 할머니의 칼로 내리꽃는 듯한 차가운 눈빛과 침을 탁 하고 뱉는 듯한 지저분한 말투에 제 가슴이 파괴되어버릴것만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거든요. 심지어 모든 사람의 태도를 멋대로 비교하고 판단하며 군림하려는 듯한 태도에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듯한 분노를 느낀 적도 있습니다. 할머니의 모든 면면을 다 갈기갈기 찢어서 파괴해버리고 싶을 정도였어요. 불건전한 권위에 대해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에 이토록 큰 트라우마를 냈다니요. 저의 내면에는 그렇게 분노가 차곡차곡 쌓였고, 언제라도 누군가 건드리면 모든 걸 금방이라도 폭파시켜버릴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남에게 지적질만 하는 그 태도를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수백번이고 속으로 이런 말을 대뇌었습니다. 그대는 어떤 가치관을 근거로 남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건가요? 강자는 무차별적으로 남에게 자신의 요구사항과 기분을 쏟아내고, 약자는 감정을 꾹 눌러담은채 군말 없이 몸으로 일을 해야 하는게 이 나라의 법칙인가요? 강자의 기분이 모든 사람의 옳고 그름의 기준이고, 그 지배욕구를 남이 직접 채워줘야 하는게 며느리의 도리인가요? 이 사회의 ‘나이’라는 위계질서 안에서 미성숙한 인간의 본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다 망가뜨릴만큼 그리 대단한가요? 당신이 타인에게 끼친 잔혹성을 단 1초라도 되돌아본 적 있나요? 저는 그 어떤 어른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나이를 필두로 고압적이고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어른은 특히요. 그 위계질서 안에서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적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나이 적은 사람은 말없이 움직이는 꼴을 보면서 기가 찼습니다. 겉보기에 모두가 예의를 지키는 것 같았지만 그 누구하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실을 보며, 모두에게 빅엿을 먹이고 싶었습니다.     


저는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예의’란 웃어른을 공경하고 말씀을 잘 따르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학교에서 배운 ‘예의’를 저는 도저히 지키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인간의 도리’라는 것이 위계질서의 역할에 한정되어 있으며,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챙겨주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말에 따르는게 예의라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챙겨준답시고 모든 걸 간섭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말을 공경한답시고 자신을 갉아먹는게 진정한 예의인지 의문이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인간의 본능, 즉 군림하고 싶은 우월감과 의존하고 싶은 나약함을 서로 상부상조하며 채워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사랑과 예의라는 허울좋은 껍데기를 몸에 걸치고서요. 


자신들이 가진 나약함과 우월감을 해결하지 못한 어른들은 때로 죄책감을 느끼는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쁜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 하는 것 같았어요. 엄마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려는 시도조차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억누르며 살까요? 어른들은 행동은 모두 고장난 인형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더 이상 어른들을 믿고 따를 수 없었습니다. 아니 존경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가장 곁에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든것 하나 뿐이었습니다. 다른 어른들이 저를 예의없고 싸가지 없는 아이라고 치부하고 뒷담화를 할 것 것아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게 힘들었어요. 어른들이 저를 버리면 저는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거든요. 저도 한낱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으니 말입니다.      


1살, 2살 먹어가며 제 표정은 점차 어두워져갔습니다. 어른들을 믿고 의지할 수 없었기에 솔직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에게 인사도 건성으로 하고 부모님에게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아무하고도 이야기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부모님도 저에 대한 답답함이 쌓여있는지 문을 닫고 있는 제 방을 손으로 쾅쾅쾅 두드리더니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시고 알 수 없는 지독한 말들을 쏟아내셨습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시간이 넘도록 제 방문을 향해서 온갖 소리를 지르는데 분명 그것은 애정이 담긴 조언이 아닌 스트레스 풀이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제 마음 안에는 상처와 감정의 쓰레기 더미가 가득가득 쌓였습니다. 부모님께 비난을 들을 때마다 저는 스스로를 이 추악한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 또는 고독하지만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추악한 세상에 타협해버린 어른들과 무참히 서로에게 해악을 끼치는 자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에게 화풀이를 하기 전에 어김없이 이상한 직감이 찾아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는 그 느낌.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척 어르신들이 저에게 인사를 안하는 예의없는 사람이라며 하나같이 모두 불평불만을 쏟아내셨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빠는 제가 예의 없다며 아주 무섭게 혼을 내셨습니다. 저는 분명 무표정으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무미건조하게 대했을 뿐인데 말이죠. 2시간 넘게 아빠가 저에게 소리지르는걸 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른으로써 예의를 다하지 못했으니 제가 죄인이 된게 맞습니다. 미움받을까봐 두려운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대체 예의라는 게 무엇이길래 저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걸까요. 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고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고 비난을 할까요. 저는 내 마음과 다른 생각을 해야하고 억지로 행동까지 해야만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고역스럽습니다. 예의라는 것이 윗사람의 의견만 절대적으로 중요시 될 뿐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당신들을 존중합니다만, 당신들의 행동이 저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큰 상처가 되니 개선이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낱 어린 아이이고, 그 누구도 내 생각을 들어주지 않기에 오해를 말끔하게 풀 기회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자유롭고 싶습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고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어른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이 집을 나가서 그 누구와도 굳이 만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가 되고 싶어요. 마음의 자유와 평온을 얻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차이점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고, 나이와 상관없이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며, 때로는 함께하기 위해 서로의 의사를 물어보는 그런 가정환경에서 살고 싶습니다. 


윗사람으로써 권리만 취하고, 아랫사람으로써 의무만 지는 가정에서 자란 어른들이 열등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깊숙이 숨겼다가 터트릴 기회를 잡아 채서 어린아이에게 잔인하게 쏟아내고, 제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더 혼자만의 세계에 깊게 파고들었고, 할 말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서 그런지 항상 목이 꽉 막힌듯한 기분을 느끼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스스로의 발언권을 스스로 억눌렀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말하지 않고 수동적인 자세로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어요. 제가 말을 해봤자 공격을 당할게 뻔했으니까요. 누군가가 밧줄로 목을 메어 질질 끌고 다니는 듯한 압박감을 매순간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인생에 또 하나의 깊은 트라우마를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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