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주양 Jun 14. 2023

[3화] 연민과 증오 사이

이해받지 못한 마음

제가 있는 집안에서는 손바닥만큼도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제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면 제가 무안해지고 또 다시 비참해질게 뻔했습니다.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저에게 하소연을 쏟아내셨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참 안쓰럽더군요.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들어주고 받아내야 하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의 도리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를 붙잡고 온갖 감정을 쏟아내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저는 엄마의 감정을 대신 해결해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습니다. 그 압박감이 고스란히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감정적인 위로보다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뒤에서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엄마가 바보 같아 보이더군요. 겉으로는 맞장구를 치면서 마음속에는 항상 이런 말을 대뇌였습니다. "도대체 왜 저러고 살지? 귀찮고 싫다."


중학생이 된 저의 태도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게 피곤해서 방문을 닫고 들어간 적도 많습니다. 지친 저를 보고 엄마는 언제나 신경질을 냈어요. 그런 저를 보고 엄마는 저에게 피해의식이 있다고 다그치셨습니다. 피해를 준 게 누군데 제가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다니요. 그렇게 엄마에게 내 시간과 마음을 쏟아부었는데 더 쏟아붓지 않았다고 돌아오는 건 저에 대한 서운함을 넘은 비난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인 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고 계셨습니다. 글쎄요... 어린 제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부모님께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을까요.


엄마의 서러움은 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에게 저를 나쁜 아이라고 욕을 하고 외면해 버리셨죠. 아마 저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자식이 부모님을 버릴 수 있나요? 엄마의 망상 속에서 저는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제 마음은 더 깊은 상처로 패였고, 엄마에 대한 배신감마저 느껴졌습니다. 애초에 저 혼자 엄마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을 떠넘기더니, 이제 그만하라는 저에게 피해의식이라는 망상이 있으니 정신과에 가자니요. 


엄마는 저에게 이해와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언제나 공격적인 행동으로 일관했습니다. 제가 그만하라고 이야기하면 저를 정신병으로 둔갑을 시켰죠. 아니, 그때 저는 엄마의 공격에 지친 나머지 진짜 피해적 사고에 갇혀 있었는지 모릅니다. 내 감정에 파묻혀 혼자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며 분노를 키워나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오해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령 오해를 푼다 할지라도 그 끝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아닌 굴욕스러운 패배감과 모두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으로 마무리될 게 뻔했어요. 부모님은 물론 저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원만하게 해결되리라는 기대도 없었습니다. 


반항을 하고 싶어도 반항할 수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부모님은 자식의 반항을 견뎌낼 힘이 없다는 걸 내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모님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부모님은 저를 전혀 이해 안 해도 되는 상황이 서글펐고, 이것이 어른들의 특권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아빠는 저에게 엄마가 아프면 눈치를 봐서 위로를 해주고, 엄마가 힘드니 배고프면 알아서 밥을 차려먹으라고 무섭게 다그치셨어요.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밥을 차려먹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어렸던 저는 부모님께서 구박당하고 방치당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방 안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며 가슴을 내리 쳤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청승맞게 울고 있다고 또 혼이 났거든요.


제가 있는 집안에서는 손바닥만큼도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요구사항 앞에서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내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면 수용받지 못하기에 제가 무안해지고 또다시 비참해질게 뻔했습니다. 내가 오해를 풀려고 시도했을 때, 부모님과 또다시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될까 봐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부모님이 저에게 원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아닌 권위에 대한 굴복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에게 굴복을 받을 때야만 사랑받는다고 느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굴욕감을 느끼며 부모님의 요구사항에 응대하기 싫은 저를 자책하는 일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억울함, 비참함, 수치심을 수시로 느끼고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가장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요. 아마 저는 엄마의 말대로 정말 청소년 우울증에 걸렸는지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 아무 말하지 못한 소심한 저에게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는 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부모님이 저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당신은 사랑받고 존중받을만한 사람입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자존감을 저의 사랑을 통해 채우려 했고, 저는 어떻게 사랑을 주고 자존감을 채워줘야 할지 몰랐습니다. 다만, 생존이 걸려있기에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치욕감을 느끼고 또 그런 부모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 02화 [2화] 버려진 아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