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지 못한 마음
인생은 껍데기뿐입니다.
중학생인 저는 그렇게 인생을 일찌감치 정의 내렸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부모님과 똑같습니다. 어른들은 자신이 상처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 남이야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저는 중학생이 되자마자 교도소의 수감자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선생님들은 교육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셨습니다. 아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하며 당구채 같이 큰 매를 들고 다니셨습니다. 복장 감시는 물론이고 성적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경쟁시키고 차별하고 처벌하곤 하셨어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믿지 않고 혐오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숙제를 안해왔다는 이유만으로 키가 160도 안 되는 어린 여자아이이 팔뚝을 사정없이 내려치고 뺨을 때리는 일도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온몸이 벌벌 떨리고 기절초풍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키가 190cm가 넘는 남자 선생님이 운동장 한가운데서 여자 아이의 머리와 뺨을 사정없이 내려치는 선생님도 있었어요. 그 여자 아이가 받았을 몸과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하죠?
그저 하루하루를 아무 일 없었던 듯 넘기고 또 넘길 뿐입니다. 우리들은 중학생이 아닌 가축들이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만이 우리들을 움직이는 도구였습니다. 중학교에서는 공동체 생활을 한다기보다 어른들이 주입시킨 것들을 재빨리 암기하고, 어른에 대한 복종을 누가 더 잘하는지 평가하는 업체 같았습니다.
저는 도무지 어른을 공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집도 학교도 사방이 본능으로 날뛰는 짐승들만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쳐야 할 의무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 인간으로서 품격은 서로 지켜주는 게 낫지 아닐까요?그 속에서 저는 내면에 패배감과 무력감이 짙어져 갔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어른들에 대한 깊은 분노와 환멸감을 도무지 어떻게 해소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로워질까 봐 두렵습니다. 제 깊은 속내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내가 먼저 소외당하지 않고 내가 당장 선생님께 맞지 않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교실 안에서 저는 최소한 약자가 되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몰려왔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배우고 서로 깊은 소통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여 저는 저를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처세를 발휘했습니다. 제 본마음을 숨기고 그저 착하게 행동하고 친구들에게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공부도 그저 그렇게 했습니다. 사실 딱히 공부를 안 할 이유도 없었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이유도 없었거든요. 저의 눈속임에 친구들이 한 명 두 명씩 속아 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저를 그저 착한 학생으로 봐주는것 같아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은 저에게 친절하고 학교생활은 무난했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어떤 기분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거든요. 교우관계가 어렵지만 한편으로 또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익살스러운 재롱에 친구들이 하하호호깔깔거리며 재밌다고 박수를 보냈고, 박수를 받고나서 제 책상으로 되돌아오면 저 가슴 한편에서 밀려오는 쓰린 자괴감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거짓인 나를 보여주며 지나치게 애쓰는 모습이 비참하고 하찮게 느껴졌어요. 하교 후 집에 도착하면 온몸이 녹초가 되어버려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답니다. 한편으로 나는 이토록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저 저를 소비하면서 즐기고 웃고 있다는 생각에 그들이 괘씸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저기 다른 곳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면 순간이동이라도 해서 그 세계로 가버리고 싶었습니다. 내 행동이 거짓투성이라서 스스로를 쳐다볼 수 조차 없는 지경에 이른것입니다. 저는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진실로 내 마음속 농밀하고 깊숙한 부분을 누군가와 나누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어요. 깊은 따스함을 느끼고 싶습니다. 적어도 “괜찮아.” “잘했어.” “이해해.” “그럴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어요.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저에게 신경 써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힘들어 보이고 또 그들에게 이해받기를 포기해 버렸기에 그저 혼자 순간을 견딜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에게 나의 존재가 짐이 된다면, 만약에... 만에 하나, 내 존재가 없어진다면, 아마도 더 그들의 더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우리 엄마는 가족들을 앞에서는 잘 챙겨주지만 다른 아줌마들을 만나면 모든게 넌덜머리 난다는 표정과 실감 나는 제스처를 선보이며 가족들을 신랄하게 욕 하셨습니다. 제가 방 안에서 다 듣고 있는 걸 알 텐데말이죠. 한때는 엄마의 저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도통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을 싫어하는건지 좋아하는건지 모르겠어요. 뒤늦게서야 아줌마들에게 동정을 가장한 애정과 공감을 받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지만요.
제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엄마의 눈빛에는 사랑과 열정이 철철 넘쳤습니다. 무엇이 우리 엄마를 이렇게까지 변질시킨 걸까요. 혹시 억지로 우리 가족들과 살고 있는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억지로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맞아요. 엄마는 다른 사람을 챙기는 역할이 역할인데, 그게 참 힘들고 고달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불평을 하면서 억지로 우리를 챙기기보다 뭐든 좋으니 하고 싶은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습니다. 저는 엄마가 저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보다 행복한 사람이길 바랐거든요.
하지만 친척들과 아빠를 비롯한 엄마를 둘러싼 많은 분들은 엄마가 행복해지는 것보다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는 사람이길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또한 친척들에게 가사일을 도우며 희생하는 것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과연 엄마의 희생이 진정한 사랑인지 의문이 든적도 많았습니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사랑이 과연 희생인가요?
엄마는 아빠에게 콩팥기증을 받고, 친척들에게 희생하는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로 고역이었습니다. 서로의 소중한 인생을 저당 잡고 자신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아슬아슬한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엄마의 몸은 점점 아파져 가고 마음에 쌓인 불만족, 원망, 분노 등 그 수많은 감정들... 그 무엇도 위로받을 수 없는 이 추레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몸부림을 보았습니다. 그 감정의 쓰레기를 모두 저에게 던지는 또 한 명의 희생과 의존의 연속. 그렇습니다. 제 인생은 상처껍데기 뿐이에요.
어린 나이에 내 인생을 반쯤 포기한 채로 살아갈 때쯤 TV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스타가 나왔습니다. 아이돌 스타를 본다는 것은 제 꿈과 희망을 다시 꽃 피워도 될 만큼 환상적이고 달콤했습니다. 다가설 수 없지만 현존하는 그들의 판타지 세계관에 매몰되어 하루종일 저는 아이돌 스타의 사진을 보고 노래를 들으면서 그들이 만들어놓은 유토피아 세계로 떠났습니다. 하루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현실을 잊는 게 하루의 낙이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허용된 전부였습니다. 내가 동경하는 아이돌 스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노랫말로 대신 다 해주는 것 같았어요. 사랑과 자유! 그래요! 저는 사랑과 자유를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