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지 못한 마음
울지 않고는 웃을 수 없으며,
미워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사랑을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이란 보호라고 생각합니다. 보살펴주고 예뻐해주고 눈길을 떼면 안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낳았을 때 아기를 대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가족들이 굶지 않고 밥을 잘 먹여 생존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고 여기며, 누군가는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연인 간의 로맨스라고 사랑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희생과 헌신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공감과 이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자유와 독립이라고 말하죠. 누군가는 사랑이 자기자신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거대한 연결성이라고 말합니다. 분명 단어는 하나인데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사람들의 얼굴 모양만큼이나 다양합니다. 게다가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은 그 모호함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죠.
저희 엄마가 저에게 쏟아부었던 사랑의 형태는 어떤 것이었을까요?제가 무기력한 이유, 우울증에 걸린 이유, 스스로를 죽도록 혐오하는 이유, 매일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사랑을 되짚어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엄마의 관계는 애증으로 점철이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가 좋지만 다가가면 불편해서 싫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관계가 있을까요? 긴 세월동안 내가 너이고, 너가 내가 되어버린 인생에 깊숙이 관여한 관계의 흔적에는 애정과 증오의 실타래가 단단히 뭉쳐져 있었습니다. 깊이 들여다보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하나 뜯어내야 했습니다. 흘린 눈물 만큼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미워한 죄책감을 발견하기도 했고,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평가하고 비교하고 무시하며 함부로 취급당한 굴욕감도 있었습니다. 내 존재 자체만으로 이해받지 못한 서운함과, 때때로 얼토당토치도 않은 오해와 의심을 받고 화풀이 도구로 취급당한 것에 대한 분노도 있었습니다. 내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치욕감과 자괴감까지 발견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의존하고 챙김받고 싶은 나약한 마음까지. 부모와 자식 관계가 사랑이 아닌 권리와 의무의 관계에 속박되어 있었습니다. 벽돌 같은 책임감으로만 이루어진 관계가 노동으로 느껴진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부모님께 이야기할라 치면 “넌 그런 감정을 느끼다니, 넌 참 이상해” 하면서 부정을 하거나, 혹은 “그런건 잊는거야. 잊어! 잊어!” 하면서 소리를 치셨습니다. 자녀가 감정을 드러내고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게 부모님 입장에서 편했겠지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자녀는 감정 없이 고분고분 해야 하고, 부모는 감정을 폭력적으로 드러내도 허용이 되는게 부모가 된 특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엄마는 각 가족구성원들을 한명씩 불러서 하소연을 하시면서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항상 이야기를 하십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넋두리 정도였겠지만, 결과적으로 가족들 간의 이간질과 오해를 일으키는 행위를 하신다는 걸 스스로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요구하는대로 자식들이 해주지 않을 경우, 밥까지 차려줬는데 왜 말을 듣지 않느냐고, 내가 원하는대로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비난하고, 자신의 뜻대로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버스비를 제외한 모든 용돈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저에게 자신이 요구하는걸 들어주지 않을 경우, 가차없이 비난하며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괴롭히고 압박해서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어느 순간 저는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형식만 갖춘 냉정함을 유지하곤 했습니다. 일종의 생존전략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딱히 바라는건 없고, 나를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만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억지 친절을 베풀어야만 하는게 진정한 가족관계인지 그리고 이게 사랑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가족들을 생각하지만 그 관계 속에 들어가면 저는 매우 무겁고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운 마음을 견딜 수 없었거든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사랑하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는 항상 집에서 방문을 닫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마음의 요동침을 꾹 눌러담았고, 성공해서 이 집을 빨리 나가야겠다는 오기로 똘똘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독립할 수 없는 저의 경제적 능력을 탓하는 순간도 있었죠. 아무 말없이 집밖과 방안을 오고가는 저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언제나 체념과 걱정 그리고 괘씸함과 미안한 복잡한 마음이 베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와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시켜야 할지 모르겠고, 대화를 시도해봤자 나도 모르게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고, 그럴수록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꼬여만 갈게 뻔하기에 침묵을 지키고 가끔 부모님이 꼭 알아야 하는 가벼운 소식정도만 전할 뿐이었습니다. 그게 제가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과 예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생존을 위한 자기방어였는지 모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제가 견뎠어야 하는 것은 바로 소외감이었습니다. 저를 제외한 가족들이 함께 몰려다니면서 그들끼리의 세계는 공고해져갔습니다. 한편으로는 내 마음 좀 알아주지, 나 좀 챙겨주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가까이가면 다칠 것이 뻔하기에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들의 욕망을 채워줘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며 내가 지치고 상처입을게 뻔하고, 함께하고 싶지만 함께 하는 순간 더 크게 느껴야 할 소외감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외로움은 내가 어딘가에서서 혼자 죽어도 가족들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원망섞인 망상까지 들었고, 정말이지 저의 상상력은 저를 매일 미치도록 괴롭혀 곧 죽을것만 같은 위기감까지 느끼곤 했습니다. 아니, 제가 죽는다면 부모님은 귀찮은 존재가 사라졌다며 편해졌다고 은근히 기뻐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학생 때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가족을 위한 자살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