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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양 Jun 15. 2023

[7화] 셀프구원능력

이해받지 못한 마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는
스스로를 구원하는 최적의 방법이다.



지독한 우울함이 주는 간절함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점점 고달파진다. 나이가 들수록 약해 빠진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는 기분이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니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진다.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나의 의지와 다르게 펼쳐지는 주변 환경과 인간관계가 나를 더욱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나의 마음이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있어 그 어떤 희망에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러다가 내가 내 인생을 컨트롤하지 못해서 넘어질까봐 두렵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혐오하게 될까 봐 겁이 난다. 때로는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온갖 불쾌한 상황 속에 나를 굴복시켜야 할 것만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든다. 처해있는 환경에서 알 듯 모를 듯한 이질감을 느끼지만 꾹꾹 참고 괜찮은 척 나의 진심을 숨기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받아들여질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마음속에 남는 것은 소외감과 허무함뿐이다. 때때로 나를 뒤흔드는 인간적인 나약함과 채워지지 않은 결핍 그리고 트라우마 속에서 세월을 보내며 수없이 감정적 혼란과 현타를 느끼고, 그럴 때마다 분노하고 숨기를 반복하면서 이 세상에 치를 떤다. 그렇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 누군가가 나타나 나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지독한 우울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 인생을 통째로 구원받고 싶다. 미치도록 간절하다.



나는 나를 구원하기로 결심했다. 

어렸을 때부터 심리학 서적을 꾸준히 읽어왔다. 나조차 알 수 없고 모호한 내 마음의 부대낌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서적을 읽을 때 잠깐의 위로와 공감만 받을 뿐 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심리학 이론에 대한 지식은 점점 쌓여가지만 나의 고통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아무것도 소용없는 현실에 절망감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정말로 나 자신을 바꿀 수 없을까? 죽을 때까지 나는 이대로여야만 할까? 그렇다면 내가 이 생을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평생 환경을 탓하고 남을 원망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이 생을 살고 있는 내 존재 자체가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결코 나의 감정적 고통을 나만큼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해 주지 못했다. 결국, 내 감정은 내 것이고, 아무도 나를 구원해 주지 못하니, 내가 나를 구원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나의 현실이 불쌍하고 초라하고 슬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슬픔은 지금껏 내 인생의 책임을 회피한 대가였다. 나는 그 대가를 치르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를 내 눈으로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고, 반드시 이 고통의 실체를 밝혀, 이 더러운 세상 속에 나 하나만큼은 행복하게 만들어 놓고야 말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이 결심은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자 스스로에 대한 예의였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 또한 내가 직접 찾는다.

정신과 전문의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나의 감정을 모두 작성해 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한글파일을 열어 내가 힘든 이유에 대해 작성해 봤다. 막상 내 감정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니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정의 내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꾹 참고 계속 글을 작성해 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습관적으로 내가 자기검열을 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미화된 글을 작성하고 있었다는걸 자각하였다. 다시 한번 나는 전문의의 가이드대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결심하고 온갖 이야기를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냈다. 그리고 나서야 내 상태를 자각할 수 있었다. 내가 비참함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원망과 분노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 그 공격성이 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 아직도 난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을 만큼 나약하고, 세상과 인간에 대해 무지하며, 이상적인 나를 진짜 나라고 믿고 싶어 한다는 것. 글을 쓸 때마다 마치 깊은 하수구에 나의 몸을 담그는 것과 같은 거북한 기분이 들었다. 수 백번 헛구역질이 나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힘겹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나는 나를 수용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억은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낚싯대 (feat. 감정일기)

감정일기를 쓰는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매우 큰 감정적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일단, 컴퓨터를 켜고 빈 파일을 열어 당장 생각나는 중요한 사건부터 떠올렸다. 잊으면 없어질 줄 알았던 트라우마 기억이 하나하나 올라오고 마음에서 천불이 났다. 이때 난 스스로에게 모든 행위를 허용했다. 온갖 욕설이라도 좋고, 유치해도 좋고, 멍청해도 좋고, 수치스러워도 좋고, 지질해도 좋고, 이기적이어도 좋고, 욕망덩어리어도 좋고, 추악한 빌런이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사람이 되어 집중력 있고 아주 깊게 내 감정에 몰입하여 감정일기를 작성했다. 감정적 불쾌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역겹고, 울분이 터지고, 수시로 분노와 짜증의 덩어리가 내 가슴팍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감정일기를 쓰다가 수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내 감정의 실체를 확인했다. 성난 감정이 가라앉은 후 일기장을 다시 보니 내가 느낀 감정과 고정관념의 일체가 실타래처럼 마구 뒤엉켜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 감정의 덩어리와 내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문제점들이 알고리즘처럼 짜여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마음의 실체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나는 나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힘이 생겼다. 그때부터 나에게 자기확신과 자존감이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통 속에서도 성장의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능동적인 고민해결방법 (feat. Q&A 일기)

감정일기를 쓰고 난 후, 시도 때도 없이 요동치던 마음이 가라앉아 내면이 고요해지고 시원해지는걸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심심하고 무기력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게 나는 아주 오랜 기간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감정일기를 쓰며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감정이 해소되고 난 후 항상 드는 생각은 '나의 고통은 무지함에서 비롯된다'라는 것이다. 나에 대한 무지, 인간에 대한 무지, 그리고 세상에 대한 무지까지. 무지는 지식의 문제가 아닌 지혜의 문제였다. 당장 내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지혜의 불씨를 키워야 했다. 나는 고민하는 것들을 짧지만 핵심적인 한 문장으로 리스트업 해 보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변을 달아보았다. 마치 대학생 때 논술시험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지혜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많은 전문가의 서적과 영상을 보면서 조언을 얻고, 그 조언을 나의 상황에 적용시켜보고 나만의 언어로 소화시키는 연습을 했다. 슬롯의 낡은 부품을 교체하는 것처럼 미성숙한 고정관념의 뿌리를 뽑고, 지혜롭고 성숙한 사고방식을 의도적으로 심었다. Q&A 일기를 수없이 작성한 결과, 이제는 더 이상 나의 고통을 방관하거나 남 탓 또는 상황 탓으로 결론지을 필요성을 못느끼게 되었다. 모든 고민 앞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해결방식을 취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자기확신과 자신감이 제대로 생기기 시작했다. 행복의 열쇠가 점점 내 손에 쥐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감정디톡스, 경험은 쓰고 깨달음은 달콤하다. 

나에게 직면한 모든 인생의 문제가 곧바로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문제는 하루 만에 풀리기도 하고, 어떤 문제는 몇 달에 걸쳐 낑낑거리며 풀기도 했다.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내 안에 쾌감과 환희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산책을 나서면 성장의 보상은 더 크게 느껴진다. 문을 열 때 내 눈앞에 커튼처럼 쏟아지는 밝은 햇살, 내 머릿결을 어루만져 주는 자상한 바람, 나의 성장을 축복해 주는 나무들을 느끼면서 마음이 따뜻함으로 꽉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아, 행복해!', '아,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구나'라는 깊은 마음의 충족감이 들었다. 물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또 다른 지난 감정과 인생문제가 떠오르지만 말이다.� 때로는 불편한 익숙함이 너무나 유혹적이어서 안주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그동안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꼭 자신을 구원하길 바란다. 스스로를 구원해 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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