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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양 Jun 15. 2023

[8화] 인간의 본능

이해받지 못한 마음

잉여 DNA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를 기생자, 즉 기껏해야 다른 DNA가 만든 생존기계를
얻어 탄 무해하지만 쓸모없는 군식구로 보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中」




가족이란, 서로를 아껴주고 지켜주는 운명공동체라고 합니다. 미디어에서는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주로 보여주죠.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이리 둘로보고 저리 둘러봐도 온통 웃고 있는 아이들 뿐입니다. 그런데 제 자신을 보면 주변 친구들과 전혀 다른 모습뿐입니다. 매일 혼나서 마음이 지치고 외롭습니다. 형제끼리는 서로 빼앗고, 편가르고, 뒷담 화하면서 양보의 의무를 강요당합니다. 비참한 현실이 계속될수록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환상은 더욱 커질 뿐입니다. 허나, 환상이 크고 현실을 외면하면 할수록 인간의 이기적 본능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각자의 불안을 해결하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한 명의 희생자를 만들어서 소외시키고 비난하며 불안함을 달랬습니다. 누군가를 소외시킬 때에는 아주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서 쉽게 단정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오해를 부풀리고 이분법적으로 타인을 나쁘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버리고 조롱 섞인 태도로 그 대상을 깔봅니다. 비난의 대상은 저를 포함하여 계속 바뀌었죠. 그렇습니다. 저는 가정에서 왕따였습니다. 가족구성원 각자 스스로가 치러야 할 모든 감정적인 고통의 원인을 저에게 전가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모든 이야기에 웃으면서 핀잔과 무시는 기본이기에 대화를 하면서 제 마음속에 남는 것은 민망함입니다. 가족들과 대화는 매 순간 자신들이 손해를 보는지 안 보는지 의도가 깔려있는 계산적인 물음들 뿐이었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죠.  


가족들과 대화에서는 아무 기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니 저 또한 가족들의 기대를 채워주기 싫더군요. 더 이상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로 잘 지내보려는 마음이 "1"도 없이 친절과 양보만 받기만을 원하고 자신의 심리적 이득만 챙기는 사람과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의 모든 행위는 타인의 불행을 들추어서 그들의 마음 안에 들끓고 있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전환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고 있었죠.       


부모님은 시시때때로 자매끼리 비교하여 개개인의 고유의 특성까지 비난하며 뜯어고치려고 하셨습니다. 저희 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저를 상처 주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언니 또한 부모님의 비교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은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주변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 상처를 주기 마련입니다. 언니는 저와 자신을 얄밉게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제 약점을 파고들고, 자신이 저보다 우위라며 단단히 밝혀두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만 공격적으로 나오는 언니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저를 드러내지 않고 언니가 열등감을 느끼는 저의 장점을 최대한 숨기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부모님이라는 권력에 붙어서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의 애정욕구를 채우곤 했죠. 부모님 또한 언니의 행동을 반겨하셨습니다. 언니의 거짓말과 가족들의 오해를 돌파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면서 매일 혼자 두려워하고 푸념만 했습니다. 급기야 내가 이상한 건지, 식구들이 이상한 건지 헷갈린 적도 여러 번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가 이상했던 것 같습니다.


제 심장의 심층부에는 지독한 패배감이 쌓여갔습니다. 저는 가족들의 비난과 압력에 못 이겨 제가 스스로 장점을 거세하고,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을 깔아뭉개야만 하는 가족분위기 속에서 저는 저를 포기하는 것만이 현실에 적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 마음과 행동, 앞과 뒤는 매 순간 달랐고 모든 것들을 그럴싸한 포장으로 둘렀습니다. 저는 가족들의 무자비한 본능에 협조‘만’ 해야 하는 약자였고, 동시에 미운 그들에게 부대껴서 가짜온기이라도 받고 싶은 수치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이 회사라면 당장이라도 사표를 내고 도망쳤을 텐데, 도무지 가족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밖으로 뛰쳐나가면 분명히 저들이 나를 찾아낼게 뻔하고, 도망치고 도망쳐도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 지독한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가만히 버티는 것만이 내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이 무력감과 절망감. 내 생존은 저 지독한 사람들의 손에 맡겨져 있고, 내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의 날카로운 감정과 언어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으면서 아무 말하지 못하고 묵묵히 견뎌야 하는 이 고통.     


동시에 격한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저 사람들을 철저하게 무너뜨려야겠다는 파괴적인 분노가 생겼습니다. 하루빨리 성공해서 내가 그들 위로 올라가야만 저는 이 굴욕감과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제 인생의 목적이 생겼습니다. 더 이상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약자가 되어 감정적인 손해를 보지 않는 것.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회라는 더 넓은 전장에 나가서 내 존재가치를 증명시켜 보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독기 어린 야망을 품고 있는 제 자신이 한편으로는 카리스마 있는 멋지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심은 비틀어진 인생길의 시작이었습니다.


지독한 애정결핍과 열등감에 기반한 불건강한 제 인생의 목적은 ‘능력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능력 있는 어른이 되는 게 뭐가 비틀어진 인생길이냐고요? 올바른 길은 맞습니다. 하지만 꿈의 동기가 푹 패인 상처에 기반했다는 것이죠. 식구들이 저에게로부터 애정욕구와 인정욕구를 채우려고 막무가내로 저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문제인데, 저는 제가 태어날 때부터 무능력하고 문제가 있기에 뜯어고쳐야만 정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식을 지배하면서 애정을 받으려 했던 부모님의 태도가 자식의 인생길을 완전히 비틀리게 만든 셈입니다.


동시에 저는 착하고 완벽해져서 사랑과 인정을 받아내려는 병적인 완벽주의와 강박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내 존재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기에, 반드시 메워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가족들의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이런 지독한 완벽주의와 강박증이 생겼다는 건 내면에 '학대자'가 자리 잡았다는 말입니다. 제 머릿속에는 내 탓만 존재하고, 억울한 일이 생겨도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하고 금방 굴복해버립니다. 내면의 학대자는 "이유 불문하고 네가 잘못된 존재야. 이 멍청아!"라는 말을 저에게 끊임없이 말합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이 잘못한 것과 내가 잘못한 것을 부분적으로 가려내고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하면서 해결방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나만 탓하며 겁쟁이처럼 도망치기 바쁩니다. 이렇게 저는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대학교 졸업 후 직장에 취업을 하면서 본격적인 지옥행 열차에 탑승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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