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희생과 사랑
이해받지 못한 마음
희생은 사랑이 아닌 지배욕이었습니다.
희생이 뭐길래. 헌신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회에서 숭고한 그 무언가로 떠받들어지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찬양까지 하는 걸까요. 아니, 사랑이 도대체 뭘까요? 우리 엄마의 사랑은 자신을 망가뜨리고 저를 못살게 굽니다. 사랑은 타인의 미성숙한 욕구를 무한정으로 의무적으로 채워줘야 하나요?사랑은 저에게 더 이상 의미 없습니다. 받고 싶지 않고 부담스럽고 심지어 꺼려졌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서로를 지치게 만들어요. 아니, 게다가 그 희생적인 사랑은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일방적으로 재단을 하고 무시를 합니다. 네가 잘되길 바란다면서요. 그토록 잔인한게 사랑이라면 저는 다시는 사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이유로 고통스러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성한 행위라도 되는것처럼 떠들어대는 모든 종교인들도 싫습니다.
엄마의 희생적인 사랑, 그토록 미디어에서 말하는 숭고한 사랑에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중학생이 된 이후의 엄마의 모습은 사랑은 커녕 욕심과 보상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엄마의 모습이 분명히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사랑과 헌신으로 시작해서 욕심과 집착으로 사랑이 변해버리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부모님이 가정을 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하나하나 적어봤습니다. 일단, 가정을 꾸리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부모로써 성공적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 같습니다. 아이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 된다는 생각도 했을 것 같습니다. 성공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고, 그것이 곧 사랑이고 부모로써의 책임이라고 생각을 했겠죠. 그러다가 아이가 자신의 뜻대로 따라와주지 않으면, 아이가 훗날 성공을 하지 못할 것이고,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의 안위에도 문제가 생기고 인생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도 생겼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에게 사랑도 주고 받으면서 외로움도 채우고, 아이들이 자신의 계획대로 군말없이 잘 따라와주다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한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헌신을 통해 자신의 쓸모도 증명하고, 아이의 쓸모도 공고히 하고, 서로 미워하지 않고 사랑을 느끼면서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언뜻 보면 엄마의 인생계획은 멋지다 못해 완벽합니다. 심지어 저 계획을 거부하는 자식이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엄마의 저 인생플랜은 모두 실패했고,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감정적인 상처로 뒤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구나 잘 살고 싶어하고, 옳다고 생각한대로 최선을 다해서 행동을 하는게 인간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왜 우리 가족은 그토록 불행에 휩싸여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사랑에 대한 엄마의 잘못된 가치관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자신의 순수한 호의가 누군가에게 당연히 100% 전달되리라는 믿어의심치 않아 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입니다. 제가 학급 반장이었을 때, 저는 엄마에게 운동회에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엄마는 제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이시고, 음식을 사는 대신 샌드위치를 손수 만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밖에서 사주는 음식보다 직접 만든 샌드위치가 더 건강에 좋고 정성스러워서 더 좋아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셨습니다. 저는 엄마의 음식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면이 설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있었습니다.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그 많은 계란을 직접 삶고 손으로 으깨고 여러개의 야채를 조각내서 샌드위치 속을 만드시고 정성스럽게 빵을 잘라서 쿠킹호일로 하나하나 싸서 40인분 넘게 혼자 샌드위치를 만드셨습니다.
학교에 아이들 머릿수만큼 샌드위치가 도착했고 제가 원하는 아이들의 리액션이 나올꺼라고 기대했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정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학급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서 맛없다면서 제 앞에서 토하는 척을 하고, 학급 선생님께 콜라만 먹고 샌드위치는 쓰레기통에 버리겠다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친구들의 행동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엄마가 아픈 몸을 이끌고 웃는 얼굴로 고생을 하면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것이 모두 쓰레기가 되었습니다. 더 큰 상처였던 것은 학급 친구들이 저를 향해 악의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진심으로 샌드위치가 맛없다고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집에 가는 내내 얼굴이 빨개지고 어떻게 이 상황을 엄마에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원망스럽기보다 이상하게 엄마가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하교를 하면서 걱정했던 기억이 1분 1초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제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미소를 띄며 친구들에게 어떤 칭찬을 받았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아무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진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모든 상황이 부끄러워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친구들이 나에게 배려없는 행동을 한 것도 있지만, 생각할수록 엄마의 배려가 더 부족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호의를 주고 받을 때, 언제나 자신이 주고 싶은 선물, 즉 자기만족에만 집중할 뿐,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음이 오고가는 관계 속에서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심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이 호의에 응답하지 않으면 자신의 성의가 무시당했고, 상대방이 자신의 호의를 무시한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거나 섭섭해 하셨습니다. 자기감정만에 취한 일방적인 사랑이 저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으나 아무말 하지 못했습니다. 죄의식을 느낄 뿐이었죠.
엄마의 희생은 모든 일상에 뻗어있었습니다. 제 방에 일방적으로 들어와서 청소를 하시면서 제가 제때 청소를 안한다고 온갖 비난을 쏟아내시기도 했고, 제 물건을 갖다 버리고, 그러면서 저를 챙김을 받아야 하는 모자른 아이라며 비난하셨습니다. ‘너는 모자르니까 내가 무시해도 되고 귀찮지만 일일이 챙겨줘야 해’식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습니다. 엄마는 간섭이 곧 사랑이고, 아이의 의사를 물어보고 자율성을 주는 것은 부모로써 책임을 다하지 않는 방임이며, 아이를 잘못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엄마의 곁에서 제 심장은 언제나 비난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쫄아 있었어요. 부모님의 비난을 받는 고장난 인형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설겆이나 청소할 때 천둥같은 비난의 소리가 제 가슴에서 요동을 칩니다. 그래서 한동안 청소를 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은 제 의사를 단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미리 제 대답을 예측하고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해서 저를 부모님 속을 썩이는 나쁜 아이를 만들곤 했죠. 저는 시간이 갈수록 제 마음 속의 진실한 욕구와 나의 특성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부모님의 해석에 맞춰서 제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었고, 자존감은 날이 갈수록 하락하며, 제 존재 자체를 수치스러웠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비난한다면 저는 그런 비난을 당할만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씩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부모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스스로 틀어막았습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의존처가 없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입니다. 내 문제를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일찍이 거세당한채 문제는 더 심각해 졌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비난하는 습관에 따라 저는 매순간 스스로를 수없이 비난했습니다. 아니, 학대와 자학에 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모자른 나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모든 상황을 회피하기도 하고, 불안에 떨며, 타인의 기대를 채워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만 시달렸습니다. 혼자 조용한 곳에 가만히라도 있으면 마음 속에서 견디지 못할만큼 매서운 또하나의 자아가 나타나 저를 비난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내면의 목소리를 피하기 위해 컴퓨터로 게임을 하든, 친구를 만나든, 일단 피하고 봐야 했습니다. 제 인생을 놔버린 시점이 바로 이때입니다.
고등학생이 된 저는 무기력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땐 내 인생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이 상상하지도 못할만큼 많을 것이란걸 몰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