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지 않겠다
지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에세이 형식의 글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글을 쓴다면 당연히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만큼 나를 사로잡는 글의 형태는 없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모두 소설 속에 있었다. 그래서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소설은 햇살이 좋은 날 가볍게 산책하듯 시작되지 않았다.
하얀 백지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아무리 째려봐도 한 줄을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첫 문장을 쓰면 마지막 결론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그래서 더더욱 써지지 않았다.
재능 있는 작가들은 소설이란 자고로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인물들이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소설 속 인물들은 내가 쓰지 않는 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나는 그다지 재능이 없나 보다.
그렇게 소설이 잘 써지지 않으니 쓰지 않는 날들이 길어졌다. 쓰지 않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고 어느 순간 쓰지 않는 내가 더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만큼 괜찮은 나날이 이어졌다. 아니,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날이 잡혔는지, 어느 날 깊은 공허함이 몰려왔다. 딱히 그럴만한 이유는 없었다.
나의 삶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가정, 일, 공부, 관심사 모두 큰 어려움 없이 스무스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질감이 전혀 다른 독특한 형태의 공허함이었다. 다른 무엇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매우 뚜렷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글쓰기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연의 저편에서 내 안의 것들을 퍼내지 않아 말라버린 샘처럼 마음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뭐든 쓰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뭐든 쓰고 보니 에세이를 닮은 그 무엇이 되어 있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장르가 명확하게 무엇인지. 나는 그 무엇이 된 글을 쓸 때마다 모호한 경계선에서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한 건 소설은 아니라는 거였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게 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 매일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글로써.
이미 책을 출간한 작가들도 있었고 상당한 공력과 필력을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공인된 고수들도 있고 재야의 고수들도 도처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글쓰기를 맹렬하게 하는 판에 들어오니 이상한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진심 그냥 매일 뭐라도 쓰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왠지 그냥 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매일 쓰기가 부담스러워졌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과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어느새 몸을 키웠다.
요즘 들어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와 출간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 글에 대한 방향성을 논의하는 글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나의 글이 작품이 되고 출간되어 작가가 되는 것은 나의 오래된 꿈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의 힘과 기능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것이다.
그 꿈에 맞는 글을 전략적으로 쓰는 것도 매우 필요한 일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냥 쓰고 싶다. 잘 쓰려 애쓰지 않겠다.
매일 뭐라도 그냥 쓰면서 글을 쓰는 행위가 주는 그 엄청난 혜택을 순간순간 깊게 누리고 싶다.
이 즈음에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뭐, 결국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