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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인생의 지혜를 담은 멋진 은유

by 쓱쓱

나는 가위바위보를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결국 승자는 아무도 없으며 가위바위보는 승패의 게임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라고.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가위바위보는 전 세계적으로 갈등과 분쟁에 있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해결 수단이 되고 있다고 한다. (지식채널 E)


그 시초가 궁금해 여기저기 뒤져보니 종이와 가위가 일반인에게 보편화된 5세기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인도네시아, 일본, 포르투갈 등 다양한 유래와 가설이 있었다.

우리나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일본어인 잔켄포를 순우리말로 이름을 붙여 대중화되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세계 가위바위보 협회라는 것도 있었다. 오오.


뭐가 됐든 확실히 가위바위보는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매우 효율적으로 기능해 왔다.

특히 어린 시절 가위바위보는 일종의 국룰이었고 가위바위보로 결정된 사항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자는 공개적인 처형이 가능했다. (룰을 파괴하는 자는 집단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절대적일 필요가 있나 싶지만 사실 가위바위보는 분쟁 해결을 위한 단순한 수단을 넘어 공동체를 위협하는 개인의 파워를 사회적 압력으로 조절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는 전체의 압력으로 개인의 돌발상황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다시 개인의 안전과 생존을 보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인간에게 매우 강력한 정서와 경험으로 체화되기 때문에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뭐만 하면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이기고 지는 승패를 가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진사람, 이긴 사람이 생기고 최종적으로 이긴 사람이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까지이다.


이기고 지는 게임은 자극적이고 스릴 넘치는 매력을 제공해 주지만, 동시에 실망감과 패배감을 동반한다.

그래서 가위바위보는 표면적으로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공평하다는 느낌을 충족시켜 주지만, 결국 그 안에서 승자와 패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조작적으로 경쟁적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가위는 보자기를 이기고, 보자기는 주먹을 이기고, 주먹은 가위를 이긴다.

가위는 보자기를 자를 수 있고 보자기는 주먹을 감쌀 수 있고 가위는 주먹의 단단함을 이길 수 없다.


자, 그럼 실제로 누가 이긴 것인가?

아니면 누가 진 것인가?


결국 가위바위보는 이기고 지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쉽지 않은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와 지혜를 담고 있는 일종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를 압도하는 거대한 보자기를 만났을 때 우리에게는 가위의 날카로움이 필요할 때도 있고

단단한 주먹을 만났을 때에는 부수고 나아가려 노력하기보다는 포근히 감싸는 포옹력이 필요할 때도 있으며

가위처럼 날카로운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먹처럼 단단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위바위보는 계략과 머리싸움이 필요한 고도의 심리전이자, 승패를 가르는 해결 수단처럼 보이지만,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인생의 지혜와 태도를 보여주는 멋진 은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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