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점 하나
있는 둥 없는 둥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색깔이 바뀌고
질감이 변하는 동안에도
있는 둥 없는 둥
그대로 두었다.
까만 점 하나
있는 둥 없는 둥
그렇게 한참을
내 몸 같이 살았다.
지나가던 개구쟁이가
점에 선을 이어
온 맘에 까만 빗금을
정신없이 그어댔다.
산만한 마음은
어지러이 흔들렸고
있는 둥 없는 둥
까만 점은 이제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오직
천진한 낙서와
온 맘을 가로지르는
까만 창살.
있는 둥 없는 둥 했던 것이
이제는 온통이다.
아주 작은 점 하나
그런 게 있었는지도 몰랐었는데
어느 순간 온통이 된 경험이 있다.
분명 있는 둥 없는 둥 했는데,
별안간 온통이 되어버린 경험.
생각해 보니 있는 둥 없는 둥 한 것들은
정말로 위험한 것들이더라.
더 이상 인생에서 새로운 사랑이란 없다고 자부하면서도
어딘가엔 강렬히 새겨진 사랑의 흔적이 희미하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일한 생각을 비웃듯
어느 순간 온통이 되어 버려 멍했던 경험.
수많은 시간 동안 잊고 묻어 두었던 내 안의 연약함들을
별생각 없이 스치며 살아가다
어느 순간 온통이 되어 버려 참혹했던 경험.
까만 점처럼 작은 누군가를 향한 의심과 불신이
단 몇 번의 생각만으로
어느 순간 온통이 되어 스스로 마음의 창살을 만들었던 경험.
오히려 가득하면 알아차리기나 쉽지.
있는 둥 없는 둥 하는 건 정말이지 위험하다.
그러니 아주 소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내 안에 어디쯤 있는지
꼼꼼하게 잘 살펴보자
삽시간에 온통이 되지 않게 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