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치즈치킨은 필수예요.
얼마 전
둘째가 예고 입시에서 떨어졌다.
내 입시 때도 그렇게 안절부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후 4시라는 사악한 합격 발표 시간이 도무지 도래하지 않을 것만 같은..
희한하게도 비현실적인 그 시간을 꾸역꾸역 채우면서
기도가 절로 나왔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아니라,
앉으나 서나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아니, 했다가 아니라, 그냥 나왔다.
물론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앞 뒤 어떤 미사구를 꾸며 붙인 들
결국엔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게 해 달라는 거였다.
당연히 좋은 결과란 합격하는 것이었다.
마치 옛 우리네 어머니들이 뒤뜰에서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비비며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것과 유사한,
그래서 경계해야 하는 신앙의 안 좋은 관습이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냥,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나오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를 위해서는 이런 류의 기도를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그분의 계획 아래 있고 그러니 모든 것을 그분의 뜻에 맡기겠다고 기도했었다.
그런데 아이를 위한 기도는 참 많이 달랐다.
약 2년이 넘는 시간을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갈아 넣었기에
나는 일종의 딜을 하듯 기도를 했던 것 같다.
뭐, 나름 이유도 있었다.
노력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노력하는 모습을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봤기 때문에.
그래서 더 배짱을 부렸던 것 같다.
이 정도면 그래도 합격해야 하지 않냐는.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잘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네?
결과는 NO였다.
결과 발표를 확인한 아이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일상은 물론이고
덥고 추웠던 모든 방학과 모든 공유일과 명절,
유난히 많았던 휴일과 주말을 포기하고 입시 준비에 매달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12시간을 넘게
종일 하얀 도화지와 까만 연필만을 들고
수십 장의 그림을 그려내면서
몇 벌의 옷과 신발에 흑연으로 물든 까만 자국을 만들어왔다.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을 옆에서 보는 일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뿌듯하면서도
슬쩍슬쩍 불안이 새어 나왔다.
믿음과 불안이 교묘하게 엉켜 은근히 마음이 찜찜하기도 했다.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을 때 감당해야 할 아이의 마음이 헤아려져서
더 긴장이 되었다.
진심의 크기는 상심과 절망의 크기와 비례하기 때문이었다.
진심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다는 말은 어른들에게는 잘 먹히는 편인 것 같다.
생애 가장 중요한 첫 도전을 진심으로 맞이했던 둘째에게는
세상이 결코 동화 같지 않다는 것을 눈물로 익혀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생각보다 깊었다.
진심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되지 않았다.
진심을 다했는데 어쩜 그럴 수가 있는가.
인생의 긴 여정의 단면으로써 이 일은
분명 강력한 자원이자 미래를 위한 에너지의 동력이 될 것이지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는 오직 그 시간을 지나온 자들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모범답안 같은 이야기가 비록 진실일지언정
날것으로 처음 겪는 아이에게는
루저의 안쓰러운 자기 연민 같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부모는 속성상 자녀의 고통을 몇 배는 더 크고 깊게 느낀다.
그래서 다급해지고 말이 많아진다.
상심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이의 고통과
부정적인 사건에 대한 감정을 빠르게 전환시키고자
끊임없이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쉴 새 없이 지지와 응원을 쏟아붓는다.
비록 부모의 지지와 위로가 아이의 삶의 토양이 되는 것은 자명하지만,
상심과 분노와 속상함의 감정에 깊이 빠져 발보등 치는 아이를 섣불리 구원하려들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부정적인 것들을 포함해 아이의 성장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떤 감정이든 그것에 충분히 잠겨 오롯이 느낄 때 비로소 다른 감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손을 뻗듯
부모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간을 천천히 그리고 조금은 힘겹게 살아내면서
본능적으로 나가려는 손과 싸워야 했다.
아이가 구원 요청을 외칠 때까지 그저 기다리려 했다.
기다림은 다양한 형태의 불안을 불러일으켰지만
적어도 둘째의 기질과 성격 상 꼭 필요한 요소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온종일 울던 둘째는
저녁이 훨씬 넘어서야 방에서 나왔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보며 배가 고프다고 했다.
됐다.
배가 고프면 된 것이다.
배고픔은 삶의 의지이니까.
평소엔 눈살을 찌푸리는 기름진 배달음식을 시켜주며
슬그머니 마음의 가스가 빠지는 것 같았다.
기다림이 나름의 결실을 맺는 순간.
내 불안과 싸워 그래도 지지는 않았다고 느껴진 순간.
어쩌면 삶이란,
이런 순간들을 맞이하고 또 흘려보내는 것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끝은 없지만 나름의 마무리는 있는 그런 순간들의 연속.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맵고 달콤한 치킨을 먹는 둘째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핫치즈치킨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