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하는 삶

누리어 가질 수 있는 삶

by 쓱쓱

누릴 향 享, 있을 유 有


누리어 가지다.




어느 고3 학생이 그랬다고 한다.

삶의 모든 시간이 대입으로 향해 가고 있는 현실이 고달파 문득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고.

극한에 몰리면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게 맞나...? 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쩌면 그 친구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열심히 안 하는 건 아닌데,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넘들이 많은 건지,

아니면 내가 열심히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

고작 한 등급 올리는 것이 이토록 미션 임파서블이라니.


갑자기 뜬금없이 톰형이 원망스럽다는 생각.

그 형이 잘못했다는 생각.


모두가 톰형처럼 해낼 수 없는데 괜히 가슴에 바람만 잔뜩 불어넣는 건 아니지 않나.


'임파서블 한 미션'이라고 하잖아.

형처럼 가능했으면 '결국엔 미션 파셔블'이라고 했었야지.


모두가 톰형처럼 모든 것을 갈아 넣을 수 없는데,

뭐, 모든 것을 갈아 넣어도 어떤 것들은 결국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데.

누구나 임파서블 한 미션 앞에서 나처럼 한다면 파서블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그렇게 막연하게 마구 던지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그 친구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얻은 답은,

향유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었다고 한다.


음....

향유하는 삶.


특별한 성취나 달성이 없어도

그 자체를 즐기며 누릴 수 있는 삶.

그렇게 누리어 가지는 삶.


결국 향유하는 삶이란,

누릴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어떤 것.

혹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달성하고 성취하는 삶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요즘 같은 시대에

어쩌면 향유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미션 임파서블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남는 게 먼데?"

"그냥 자기만족 아니야?"


가시적인 성과나 결과가 없어도

결국엔 자기만족이라도


분명한 건

향유하는 사람은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며

자기 삶의 기준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자기 안에 기준을 세울 수 있다는 건 실제 엄청난 용기와 능력이 있다는 증거다.

물론 그 기준조차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자기 내면과의 꾸준한 소통을 통해

자신만의 기준과 좌표를 유연하게 재설정하면서

그 순간순간을 누리어 가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향유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처럼 멋진 일이 또 있을까?


향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수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되며,

삶의 순간순간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삶의 풍요로움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 있음에 의미를 깊이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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