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by 쓱쓱


문학적 삶을 표방하며 본격적인 글쓰기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대학원에 지원했었다.


둘째 아이가 막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덕분에 아주 조금 숨통이 틔였고

그간 억눌렀던 에너지가 스멀스멀 끓어오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2차 면접에서 뭉크의 절규 속 인물과 흡사한 외모의 면접 교수님은

씩씩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향해 꽤나 인상적인 멘트를 날리셨다.


"마치 무사 같네요."


문학소녀를 지향하며 문창과 대학원에 지원한 학생에게는 꽤나 혼란스러운 멘트였던 것 같다.


흠.. 무사라... 이분... 뭐지....?


어쨌거나 칼처럼 날카로운 펜을 휘두르며 수많은 문호의 무림을 누리라는 의미였을까.

문학소녀를 인질로 잡아 칼로 협박할 것만 같은 그 무사는 합격을 했고

그렇게 나는 소설 쓰기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아니, 소설가가 되는 것을 탐닉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 당시 나와 같은 소설가 지망생에게 등단이란,

끝없이 펼쳐진 메마른 사막에서 기적과 같이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매우 희박한 확률의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운 좋게 발견한 무지개의 끝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려가보지만, 희한하게도 달려간 만큼 그 끝이 멀어지는 것과 같은 아득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화수 속 보름달이 실로 어여뻐 어떻게든 잡아보려 손을 내밀 때마다 처참히 그대로 뭉개져버리는 꽤나 열받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는 거다.


새롭게 소설을 시작하고 끝문장의 마침표를 찍고 퇴고를 반복하고 재능을 탓하고

몇 차례 신춘문예와 공모전에 도전하고 최종심까지 갔다가 결국엔 실패하고

그런 나에게 실망하고 그래서 화가 나고 그러다 다시 도전하고를 반복하면서


나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지점이

마치 영겹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은 무기력감을 느꼈고

특히나 함께 합평을 하던 동기 중에 누군가가 등단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면

찌질이 같은 양가감정으로 자연스럽게 멈춤을 떠올렸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소설가로 등단하고자 했던 나만의 골인점은

그 과정 자체에 엄청난 몰입과 집중을 가능하게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극으로 몰아붙였고

결국 호흡 조절에 실패하게 되면서 중도 탈락이 된 것이다.


후에 호흡 조절에 실패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대충 이런 것들이 추려졌다.


1. 여유가 없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그 당시 나에게는 글쓰기에도 내 자신에게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골인점의 테이프를 끊고 싶은 욕망이 글쓰기의 즐거움과 유익을 넘어 나를 완전히 잠식했던 것이다.


2. 타인과 비교했다.

같이 공부하던 지망생들이 가끔 선택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름 선의의 경쟁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안 되는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며 재능 없음과 무능함의 화살을 열심히 내 몸에 쏘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비교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어쨌거나 결국엔 인간을 서서히 시들게 만드는데 탁월한 것 같다.


3. 실패를 실패로 끝냈다.

거절과 실패가 거듭될수록 내 안의 긍정성은 서서히 희미해졌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니, 실패는 또 다른 기회니하는 말들이 무의미한 헛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실패를 그냥 실패로 끝냈기 때문이었다.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을 실패라고 마무리한 곳에서 어떤 다른 것들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4. 잘하든 못하든 계속하지 못했다.

꾸준함, 성실함... 말하는 사람도 입이 아프고 듣는 사람도 귀가 아프지만, 결국 계속해야 계속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잘하든 못하든이다.

계속해야 나아간다.

그러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계속하다면 어떤 형태든지 계속된다.

나는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멈췄다.

이 부분이 가장 치명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나는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의 글쓰기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은 강렬한 첫사랑처럼 언제나 내 머리와 마음을 뜨겁게 달구지만,

종종 소설의 주제가 갑자기 떠오르고 주인공과 사건이 머리속에서 엉키지만,

나의 글은 어떤 형식으로든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결국 계속 나아가는 것은

무언가를 계속 성취해 가는 것, 더 빨리 달성하는 것, 더 커지고 더 멀리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유기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닮아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고

세상과 자신에게 필요한 여유를 줌으로써 편안한 숨을 허락하는 것이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것이며

실패로 끝났을 때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잘하든 못하든 그것을 계속하는 것이다.

생명이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어떻게 해서든 계속 살아 나아가듯이

비참하고 비루해 보여도 주어진 생명력을 반짝여보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계속하다 보면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순간순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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