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1번 이상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있다.
상당히 빈번한 비율로 2번을 돌릴 때도 있다.
딸들의 특성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방에서 숨죽이며 쌓여있던 옷무더기들이 대량 방출되는 날은
흡사 영업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기계가 돌아가기도 한다.
그런 날의 끝엔 어김없이 삶에 대해 생각한다.
아아...진정 반복은 우리를 나아가게 하고 있는 걸까...? 풋.
그렇게 세탁기는 잘도 도네 돌아가는데,
왜... 수건은 늘 부족한 걸까...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화장실 수납장에
삼등분으로 고이 접어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수건들이
나를 향해 방긋 웃고 있었는데
왜... 막내는 샤워를 하면서 수건이 없다고 엄마를 외치는 걸까...
그래서 나는 우리 집 수건 사용율에 대한 추적을 시작했다.
세탁실에 쌓인 세탁물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상의, 하의, 속옷, 양말, 니트류와 운동복, 그리고 문제의 수건의 비율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이윽고 결과가 나왔고 나는 경악했다.
수건의 비율이 거의 60%에 육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체 세탁물의 60%가 수건이라는 건
아무리 수건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너무나 높은 수치였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하는 일은 자명해졌다.
수건의 사용 방식에 대한 분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매우 촘촘한 행동 관찰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 구성원들이 수건을 사용하는 방식과 빈도를 꼼꼼히 체크했다.
그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4인 가족 중 2인이 놀라울 정도로 새 수건을 마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2인 중 한 명은 그나마 자주 샤워를 하기 때문이라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댔지만,
그중 1인은 손을 닦을 때마다 새 수건을 꺼내 닦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이런?!)
물론 그 2인은 자신들의 행동에 전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나머지 2인을 향해 청결관념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하...! 말문이 막혔다...
결국 이러저러한 시도와 과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화장실 서랍장에는 수건이 꽉 차있는 경우가 드물다.
여전히 세탁기와 건조기는 잘도 도네 돌아가지만,
여전히 수건은 계속 사라진다.
여전히 수건을 채워 넣으며 생각한다.
그 많던 수건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다 새삼 깨닫는다.
수건이 사라진다는 것은 누군가 그 수건을 사용했다는 것이고
수건을 사용하면서 그의 존재가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즉,
그것은 이동이자 움직임이고 에너지이며
그것은 에너지가 깃든 생명이고 그 생명은 스스로 선택하는 자율적인 존재이며
그 존재가 환경을 기반으로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극명한 증거인 것이다.
우리 집 화장실 서랍장에서
더 이상 수건이 사라지지 않는 날을 상상해 본다.
멈춘, 정지된, 그래서 고요하고 평안해 보이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정지의 상태를 상상해 본다.
그 많던 수건은 우리 가족의 삶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가끔은 내가 환영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분명 있었는데, 분명 없는...
매번 채워 넣어도 매번 순식간에 사라지는 수건을 매번 다시 채우며 생각한다.
더 이상 수건이 사라지지 않는 날이 온다면 많이 슬플 거라고.
사라지는 수건이 남긴 이동과 움직임과 에너지와 사랑하고 소중한 존재들.
세탁기와 건조기는 오늘도 잘도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