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새해가 밝았다.
미디어의 영향이었을까.
2026이라는 숫자가 꽤나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어릴 적 공상과학만화나 SF 영화의 서막을 알리는 익숙한 숫자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니까 어느새 나는 과거에서 보았던 미래에 와 있는 것이다.
분명 배가 뚱뚱한 TV 앞에 앉아
미래소년코난과 태권브이에 홀딱 빠져 세상의 모든 악당들이 소탕되고
속없이 웃을 일들만 펼쳐질 무기개빛 세상의 2026년과는 꽤 다른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세상은 개벽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 같긴 하다.
AI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발전 속도와 방향에 대해 결국 아무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이 무시무시한 기술이 인간의 삶의 근저에 스미는 속도 또한 짐작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니,
뭐, 짐작하는 것을 짐작할 수 없게 되어가는 판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답이 정확할수록 예측이 명확해져야 하지만
웬걸, 정확하다고 우기는 답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상황이니
예측은커녕 불확실성만 착실히 몸집을 키우고 있고
그러니 맞고 틀리고만 배웠던 세대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잃어가는 것 같다.
아...,
그래서 작년 말에 내가 그토록 극심한 소화불량에 시달렸나...?
정말이지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한다는 고통은 생존의 위협을 넘어
삶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뽑아버린다는 것을 사무치게 느끼는 시간들이었지... 흠...
아무튼
돌아가는 형국이 이러하니,
문득 리추얼처럼 연초에 한 해를 준비하며 세우던 계획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계획은 결국 어떠한 지점에 다다르는 것이고
어떤 일들을 달성해 내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성취를 이루어 내는 것일 테다.
말해 뭐 해, 계획은 분명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예측이 불가하다는 사실만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계획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삶을 살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 것인지 묻게 된다.
그러다 조금 더 막 나가다 보니,
그런대로 인생에 대해 개미 똥만큼 성찰해 본 결과,
왠지 인생은
속도보다는 방향이
달성보다는 과정이
성취보다는 건강이
특별함보다는 보통이
미래보다는 현재를
가능한 만큼 충실히 보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올해는 무계획을 선언했다.
"무계획이 계획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웅? 뭐래? 하는 표정으로 잠시 멍하게 쳐다보는 사람과
아, 그렇군 하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떡이는 사람.
뒤섞인 반응 속에서 나는 오히려 신이 났다.
물론 무계획이라고 해서 무데뽀로 막살겠다는 건 아니다.
계획은 없는 대신 나를 이루는 근원에 더 집요하게 달라붙어 살아볼 예정이다.
진짜 중요한 가치와 본질에 꼭 붙어서
그때 그때 다가오는 바람과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닥치는 대로 넘실대며 다이나믹하게
대신 몸에 힘 쭈욱 빼고 유연하게
내려놓음의 평안과 매 순간 살아있음의 날카로운 감각을 충만히 경험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