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사를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 집 마지막 고등학생이 배정받은 학교까지 걸어서 5분.
그것 하나였다.
주거 환경도, 집의 구조도, 창문 너머의 풍경도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그 5분 안에 무언가를 밀어 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조금 더 자는 시간,
혹은 아침에 현관문을 닫고 나서 내가 잠깐 멍하니 서 있을 수 있는 시간 같은 것들을.
이사는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고들 한다.
환경이 바뀌고, 동선이 바뀌고, 결국 사람도 바뀐다고.
나는 그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 이사가 내게 어떤 질문을 들이밀었다는 것만은 안다.
이사 전 집은 철저했다.
아파트 정문은 앱으로 등록된 사람만 들어올 수 있었고,
단지 문은 비밀번호 없이는 열리지 않았다.
집 앞 잠금문까지.
세 겹의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집이라는 곳에 닿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허락을 보내야 했다.
그 절차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곳이었으니까.
새로 이사 온 곳은 달랐다.
정문에 경비 아저씨가 앉아 계시지만 별다른 제지 없이 문을 열어주신다.
단지 안쪽 문은 사람이 다가서면 그냥 열린다.
결국 집 앞 잠금문 하나가 전부다.
처음 그걸 알았을 때, 나는 잠깐 멈췄다.
불안한 것인지 아닌지, 그것도 잘 몰랐다.
다만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느낌.
오래 쓰던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새것을 얻은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이상한 감각.
보안이 철저하다는 건 지킬 것이 많다는 뜻일까.
아니면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일까.
보안이 느슨하다는 건 믿음이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무심한 것일까.
나는 그 질문들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발을 딛지 못한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내가 살던 아파트는 모두 복도식이었다.
여름이면 약속이나 한 듯 다들 현관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지나가다 보면 방 안이 보이기도 했고, 눈이 마주치면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집에서 고등어를 굽는지, 된장찌개인지 김치찌개인지,
복도 전체에 저녁 냄새가 뒤섞여서 마치 어딘가 한 곳에 모여 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문을 열어두면 냄새가 통했고, 냄새가 통하면 어느새 사람도 통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 마주치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나도 모른다.
아래층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는 건 대개 무언가 불편해진 다음이다.
이웃의 존재를 느끼는 방식이 얼굴이나 목소리가 아니라 발소리와 물 내려가는 소리가 된 지 꽤 됐다.
우리는 서로의 소리로만 짐작하며 산다.
비밀번호가 하나 줄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오래된 것들이 따라왔을까.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나는 아직 모른다.
비밀번호를 묻지 않는 문이 나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더 위험하게 만드는지.
낯선 사람에게 조금 더 열려 있다는 것이 믿음인지,
아니면 그냥 무심함인지.
어쩌면 그 경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지도.
다만 이것만은 안다.
안전과 위험 사이, 믿음과 불신 사이,
그 어딘가 이름 붙이기 어려운 언저리에서 혼자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문은 그냥 닫혀 있다.
비밀번호도 묻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