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단상_매(일)뭐(라도)쓰(기) 프로젝트_7월_12일차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가을이 이제 막 시작되는 밤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저녁을 먹고 학습실에서 공부를 하다 살짝 열어둔 창 사이로 불던 바람에 창밖을 바라봤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희끗희끗 작은 불빛이 보였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와 기숙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서울 시내 한 복판 언덕 위 기숙사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은 훨씬 더 화려했다. 수많은 건물들의 창들이 불빛들로 가득했다.
저렇게 많은 건물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들어가 살고 있구나,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는 저렇게 많은 공간이 있는데 정작 내 한 몸 누울 곳이 없다는 사실에 슬픔이 몰려왔다. 졸업 후 저 아래 그 어디에도 내가 머물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불안했다.
그러다 문득 부모님이 떠올랐다.
삶의 선배로서, 막막한 이 시기를 지나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가족을 꾸리고 오빠와 나를 키워낸 부모님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40대에 처음 지구 반대편 낯선 외국 땅에서 느꼈을 그 막막함과 불안은 또 어떻게 이겨냈을까.
생소하기만 한 스페인어와 변수로 가득한 이민 생활 동안 그들은 삶으로 우리에게 가르쳤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환한 웃음과 솔선수범으로 소통했고 시련과 고난 앞에서는 늘 성실함으로 대응했다. 집안에서는 서로 다투고 싸울지언정 가족을 위해서는 언제나 외부와 싸워 이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하늘에 떠 있던 달을 보며 저 멀리 외국에 계신 부모님을 불렀다. 그리고 참 감사했다.
부모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했다.
지금 나는 감사하게도 편히 내 몸을 누일 곳이 있고 가족을 꾸렸고 아이를 키워내고 있다.
내가 지금의 나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남긴 삶의 궤적과 희망의 자취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다시 부모로서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삶으로 가르칠 수 있을지,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