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단상_매(일)뭐(라도)쓰(기) 프로젝트_7월_13일차
얼마 전 회사에 신입 사원 3명이 들어왔다.
목소리가 크고 시원시원한 여직원과 둥굴둥굴한 인상에 붙임성 좋은 남자 직원, 딱 봐도 FM의 정석으로 보이는 앳된 남자 직원이었다.
이들은 입사 초기부터 20대 신참만이 뿜어낼 수 있는 신선함을 무기로 회사 이곳저곳에서 존재감을 나타냈다. 큰 목소리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인사를 건네고 적극적인 태도로 선임들을 따라다녔다.
이후 분기별 회사 전체 회의 때 신입 사원 소개 차 쪼로로 모아두고 보니 나도 모르게 광대가 활짝 올라갔다.
전 직원 앞에서 자기소개를 시켰더니 각자 스타일대로 각양각색이었다.
암묵적인 사회생활의 규칙과 한계가 은근히 견고한 회사라는 공간에서 자기만의 색깔과 패기를 발산하는 그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청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청춘.
요즘의 나에게는 왠지 모를 아련함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청춘이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감동은 딱히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존재 자체가 주는 감동인 것 같다.
신선함과 활기, 생명력과 에너지를 넘어 아직 개발되는 않은 미지의 영역과 그 미지의 세계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가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동은 그들에게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의 파장을 다시 우리에게 쏜다.
그래서 청춘을 만나면 왠지 가슴이 꿈틀대는 것 같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겁 없던 시절의 내가 순간 소환되고 세상 풍파로 저 아래 파묻혔있던 나의 가능성이 약하게나마 반응하는 것이다.
사무엘 울만이라는 시인이 78세에 썼다는 <청춘>이라는 시는 이렇게 말한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그는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정신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정신이 음악처럼 흐르는 사람에게 현실은 무서운 것이 아닌 것처럼,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라도 늘 푸른 청춘’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