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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Jan 05. 2017

쉬어가는 미니멀리즘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사람이 살면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자신의 길을 관철하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신기해하거나, 존경하거나, 부러워합니다. 미니멀리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법 괜찮은 의지와 끈기를 가지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해 왔던 저는 최근 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제 삶에서 뭔가를 실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어왔던 것은 무엇보다도 "제 자신의 변화"였고, 내가 하고자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저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아이가 하나만 있을 때는 천 기저귀를 쓰고, 물티슈 대신 손수건이나 물을 사용하고, 장난감은 빌려서 사용하고, 간식은 만들어 먹이거나 더 적게 먹이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스스로가 만든 틀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째가 생기고 육체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되면서 첫째 육아와 살림은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행위가 되었고 집안에 과자와 사탕과 빨대와 풍선과 새로운 장난감과 일회용 기저귀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둘째를 가지면서 생긴 심한 입덧을 견디기 위해 전에 없이 낭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이틀에 한 번 물을 끓여 마시고 군것질을 하거나 배달음식 시켜먹는 일을 금기시하며 지냈지만 냄새 문제로 집 안에서 요리 및 조리를 할 수 없게 되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한 생수를 비롯하여 각종 캔과 페트병에 든 음료수들이 냉장고를 점령하게 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 온 동네 포장음식을 모두 사들이는 바람에 주방은 일회용 식기와 쓰레기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물건을 덜 구입하고 가진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미니멀리즘을 열심히 실천해 주고 있지만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생활하는 첫 아이와 저는 미니멀리즘과 전혀 상관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현대의 아이이자 임산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리한 것들을 잘 유지해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면서도 더 이상 정리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스스로가 참 슬프게 느껴집니다. 손을 뻗기만 하면 정리해야 할 물건이 여기저기 걸리고 채이는데 본의 아니게 여기서 멈추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육체적인 힘겨움으로 잠시 집 안의 물건 정리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눈과 손과 귀와 머리는 아직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간을 통해 물건이 아닌 다른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제 인생의 목표나 취미생활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생활 습관이나 패턴들과 인터넷 즐겨찾기와 메모, 사진처럼 디지털 형태로 저장된 채 제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언젠가 임신과 신생아 육아라는 엄마 육체의 과부화 시기가 끝나고 또 다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러 일상으로 돌아올 때 까지 저는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한층 성숙하고 굳은 의지로 마음 먹은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스스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업데이트가 많지 않은 브런치를 꾸준히 구독하고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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