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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Aug 12. 2016

미니멀리즘 6개월, 무엇이 변했나?

나에게서 떠나간 것들

무척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느새 미니멀리즘을 실천해야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지도 6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벌써 이렇게 지났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흘렀습니다. 더운 날씨에 녹아내릴 것 같은 마음도 다잡을 겸, 한 번 정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미니멀리즘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물건을 비워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눈에 보이는 짐과 걸리적거리는 물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어디론가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실 한가운데 툭 놓여서 동선을 방해하던 의자, 지저분해서 정리도 안되고 무겁고 커서 어딘가 숨겨버릴 수도 없던 책장,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올 때마다 목도해야 했던 폭탄 맞은 집...


그래서 집에 있는 가구들을 최대한 정리하려 노력했습니다. 가급적 집에 설치되어 있는 수납공간에 모든 물건을 넣고, 그 외에는 침대와 소파, 책상과 의자 정도만 놓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아직도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정말 많은 것이 집에서 떠나갔습니다.



계획한 대로 "수납 가구"를 많이 처분했습니다. 책장과 서랍을 비롯하여 플라스틱 바구니, 플라스틱 서랍 등등. 특히 쌓을 수 있는 플라스틱 서랍은 쌓을 수 있음과 서랍이라는 특성상 내가 원하는 만큼 구입해서 깔끔하게 수납/정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10여 개를 구입해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수납 가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깔끔하지 않다는 것을 정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가구뿐 아니라 가구 속을 채우던 내용물들도 당연히 모두 함께 정리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에 걸쳐 글을 쓰면서 정리한 물건과 남은 물건에 대해 적긴 했지만 실제로 보면 책장에 있던 책 200 여권과 의류 100여 벌, 그 외 중고로 판매하거나 나누어 준 물건들, 남에게 줄 수 없어 그냥 버린 물건들까지, 남편과 제가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모은 물건들로 금액으로 따지면 수천만 원에 달할 것들입니다.


이것들 중 중고로 기부한 물건은 20만 원어치(아름다운 가게, 기부금 영수증 금액 기준)이고, 중고로 판매한 책은 30만 원어치, 개인적으로 중고 판매한 물건(주로 게임, 사무용품, 디지털 기기, 육아/묘 용품)은 50만 원어치 정도가 됩니다. 미니멀리즘이랍시고 물건 정리해서 내 공간도 확보하고 돈까지 번 셈입니다.


책장과 서랍 등 큰 가구와 사용한 흔적이 있는 화장품 등 자질구레한 물건은 돈을 받지 않고 동네에 필요한 분들께 그냥 드렸는데 동네 사는 분들의 정 덕분에 물건 나눔 하면서 제철 과일이나 아이 과자 등을 도로 선물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드린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답례로 주시는 경우도 있었고, 드림을 주고받으며 얼굴을 익혔는데 알고 보니 딸아이 어린이집 친구 어머니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마음과 경험이었습니다. 드림 횟수가 30회가량 되는데 재미있게도 남자분들은 항상 빈 손으로 오십니다. 이런 경우 나중에 아내분들이 미안하다며 따로 문자를 보내오곤 했고요. 사실 미니멀리스트에게는 빈 손으로 오시는 게 더 감사하긴 하지만 굳이 주시는 걸 마다할 필요도 없기에(특히 과일류^^) 특별히 사족을 달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도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가구를 비롯해서 그 안을 채우던 물건들까지, 저희 집 작은 방 하나를 꽉 채우고도 모자랄 물건들이 집안 어딘가에 차곡차곡(제 딴에는 열심히 그리고 깔끔하게 정리한다고 생각하며) 쌓여있었습니다. 지금도 제 눈에는 집안 곳곳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눈에 띄지만 전처럼 집안에서 움직일 때 걸리적거리거나 답답한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상회 때 같은 건물에 사는 분들이 오셨다가 이 건물 거실이 이렇게 넓었나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무척 뿌듯해했습니다.


이 물건들이 사라져서 아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끔 그런 게 있었지... 라며 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그거 괜히 정리했어!라는 생각은 나지 않았습니다. 제 삶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들은 아직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것을 정리했지만 저는 아직도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금의 상태는 그냥 살림이 조금 작은 집 정도일 겁니다. 이렇게 정리하긴 했지만 남편과 제가 처음 살림을 시작했던 다섯 평 남짓한 원룸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살림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지금 있는 살림들은 아마 그 집에 다시 들어갈 수 없을 겁니다. (특히 소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 그 집이 미니멀리스트의 집이었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더 많은 쓸데없는 신발과 옷과 화장품과 이상한 피규어와 장난감들이 가득했습니다.


미니멀리즘의 기준이 "보다 더 적게 소유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원룸에 혼자 살 적이 더 그 삶에 적합할 것이지만, "필요하고 중요한 것만 소유하는 것"에 있다면 지금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는 삶을 더욱 간소화시킬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집은 앞으로 더 많이 비워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적은 물건을 가지고 있던 그때 보다도 지금의 저를 미니멀리스트라 부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집안의 물건을 모두 들고 그대로 원룸으로 이사 가더라도 비좁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3인 소파와 퀸 침대와 안마 의자의 조합은 그 어떤 원룸에도 안 들어가겠지만요. :)


저는 이제부터 "지금의 집"에 걸맞은 새로운 미니멀리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러 가보겠습니다.

모두 더운 여름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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