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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쓰고 싶어서

7년째 무명 작가입니다

by 진경

저는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작가입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날로부터 7년, 세상에 제 글을 팔기 시작한 날로부터 만 6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루키를 흉내내듯 매일매일 글을 썼고, 그런 시간이 쌓여 20여 종류의 글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웹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썼습니다. 2차 창작을 해보기도 하고 텀블벅에서 펀딩을 해보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공포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근미래 배경의 SF 소설의 집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은 저마다 힘차게 독자분들께 가 닿아주었습니다. 기특한 일이었고, 감사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은 법이었었고, 제가 아주 즐겁게 쓴 작품이 처참하게 외면 받거나 냉혹한 평가를 받을 때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운이 좋아 괜찮은 매출을 올려주었던 작품도 있기는 했습니다. 이걸 누가 읽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끄러운 작품이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작품을 산 독자분들 전부에게 환불을 해드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는데, 작품의 매출이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정산서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이렇게 큰 돈을 벌었다니! 내가 그렇게 엄청난 작품을 썼단 말인가? 온당한 의심이었습니다. 제 작품이 좋았던 덕이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집에 갖힌 독자분들이 시간을 죽일 겸 읽어주신 것들이었습니다. 감염병 시국이 잦아들면서 일상으로 돌아간 독자분들은 다시 돌아와주지 않으셨어요. 어쨌든 읽어주셨으니 감사했지만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잠깐 반짝였던 수입은 가라앉았습니다.

마치 원래 이랬어야 한다는 듯, 저는 돈을 잘 벌지는 못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 글을 그저 매일매일 쓰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매년 종소세 시즌이 되면 대한민국 국세청은 '너 가난한 예술인이구나?'하며 제가 낸 원천징수세를 환급해 주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만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글쓰기를 참 좋아합니다.

굳이 마감이 없어도 새로운 글을 쓸 궁리를 합니다. 원래 인문/사회/문화 분야의 책을 좋아하던 저는 글쓰기를 통해 웹소설을 접했고, 지금은 웹소설 읽고 쓰는 일을 무척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웹소설 쓰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욕망이 있어 다른 글도 씁니다. 내 얘기를 하고 싶을 때는 에세이를 쓰고, 웹소설의 틀 안에 넣을 수 없는 소설을 써보기도 하고, 일기를 쓰고, 일기를 엮어 펀딩도 해봅니다. 이런 글은 어떨까? 저런 글은 어떨까? 그런 것도 쓸 수 있을까? 이런 걸 써보면 어떨까? 늘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대체로 즐겁지만 때때로 슬프기도 합니다.

주로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아쉬워할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입니다. 자기만의 색을 띤 채 독자분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들이 부럽습니다. 종이책으로 독서를 시작했던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자기 이름을 단 종이책을 출간한 작가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정신과 의사가 등단 준비는 잘 되어가시냐고 물을 때마다 어색하게 웃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롭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에 따르면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요. 저는 제가 온전히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문제를 책임져 주는 남편과 자기만의 방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지나친 욕심이라 걸 알고 있습니다. 2025년은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때보다 훨썬 편리하고 열린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주변의 반대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어쨌든 계속 글을 쓸 수 있고, 그걸 팔아 약간의 돈이나마 벌 수 있는 저는 행운아나 다름 없는 셈입니다.


글을 쓰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오늘 글이 잘 써져서 정말 기뻤다거나, 미처 삼키지 못한 욕심이 흘러넘쳐 괴로웠다거나, 오늘 만난 지망생 작가님이 너무 귀여웠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지요.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누군가 굳이 궁금해 할 것 같지 않은 글입니다만 그럼에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지나치게 길어져서 결국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명 작가입니다. 아마 별 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계속 무명 작가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고 싶으니까 아무도 찾지 않고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글을 써나가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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