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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하여

지속 가능한 글쓰기 루틴 만들기

by 진경

자신만의 루틴을 잘 지키는 작가로 손꼽히는 건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고, 휴식을 취하다가 일찍 잠에 든다고 하지요.


저도 저만의 루틴으로 글을 쓰는 편입니다.


- 오전 7시 기상

- 오전 9시~12시 운동

- 오후 12시~3시 휴식

- 오후 3시~6시 글쓰기

- 오후 6시~10시 휴식


하루키를 좋아하긴 하지만 하루키를 따라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루틴을 지키며 살아보니 하루키가 왜 저런 루틴을 만들었는지는 알겠더라고요. 루틴을 만들고 매일 운동을 하는 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하는 일이었습니다.




직장인과 프리랜서의 차이를 '월급'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직장인은 매일 같은 시간에 회사에 출근하고 그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일을 하는 대가로 정해진 돈을 얻을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일하는 만큼만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단한 프리랜서들은 적게 일하고도 많이 벌 수 있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가 프리랜서 사이의 덕담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둘의 차이가 이것뿐인 것은 아닙니다.


직장인은 루틴이 고정된 사람들입니다. 출퇴근이라는 틀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행을 다녀오거나 몸이 아픈 후에도 강제로 그 루틴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프리랜서에게는 그런 강제 수단이 없습니다. 정해진 마감만 지킨다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습니다. 아무때나 글을 쓸 수 있고 아무때나 쓰지 않을 수 있지요. 심지어 마감이 없고 돈이 급하지 않으면 무작정 놀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정말 대단히 멋지지 않나요?

하지만 글쎄요. '시간적 자유'는 유토피아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너무 많은 선택지와 자유가 주어지면 오히려 덜 행복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자세한 내용은 배리 슈워츠의 <선택의 역설>이나 댄 애리얼리의 <상식 밖의 경제학> 같은 책의 내용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처음 작가가 되었을 때,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도서관이나 갤러리를 찾는 저를 보며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워했습니다. 멋진 카페에서 신 메뉴를 먹으며 일을 할 수도 있었고요. 물론 저도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요, 심지어 그걸로 돈을 버는데요, 심지어 출근도 안 해요!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직업이 또 있을까! 처음 6개월은 그랬습니다.


문제는 이토록 자유로운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나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글쓰기를 사랑했지만 그래서 '퇴근'을 할 줄 몰랐습니다. 늦게까지 원고를 쓰다가 쪽잠을 자고 일어나 또 글을 썼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중에도 짬을 내서 휴대폰을 들어 원고를 썼습니다. 심지어 허리가 아파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조각 원고를 썼으며, 나중에 손가락이 아파지고 나서는 음성 인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식음을 전폐했고 글쓰기를 마치면 밀려드는 허기에 아무 음식이나 보이는대로 집어먹기 일쑤였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는데도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번뜩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 제 깨달음은 그렇게 멋지지 않았습니다. 병원비를 수백만원쯤 쏟아붓고나서 원장님께 정신 차리라 혼이 났거든요. "환자분. 이렇게 사시면 백날 병원 오셔도 완치 못해요." 1년 넘게 매주 병원을 찾아와 10만원씩 치료비를 내던 환자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시다니, 정말 참 의사가 아닐 수 없죠.




어쨌든 저는 제 건강을 위해서 뭐든 해야했습니다.


일단 가까운 헬스장에서 운동을 배웠습니다. 스쿼트를 한 개도 하지 못해서 스미스머신의 바를 붙들고 앉았다가 일어섰습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비틀거리며 집에 가는데 갓 태어난 아기 사슴의 다리가 어떻게 떨렸는지 잘 쓸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운동을 하고 오면 힘들어서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거든요. 일부러 낮이 아닌 밤에 운동을 해봤지만 그래봤자였습니다. 운동을 하루 하고 나면 그 뒤로 사나흘을 근육통에 시달렸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도 된 것처럼 잠이 쏟아졌습니다. 식욕은 얼마나 돋는지 방금 먹었는데 조금 뒤면 다시 허기가 졌고 짜장면을 접시채로 씹어 먹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정말 때려치우고 싶었어요. 그나마 좋은 건 운동을 시작한 뒤 관절이나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운동을 쉬면 다시 허리가 아팠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2년쯤 지나서였습니다. 마감이 급해서 운동을 쉬고 글을 썼는데 몸이 평소와 달랐습니다. 종일 의자에 앉아 하루만에 200자 원고지 87매 분량의 글을 쏟아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몸이 가뿐했습니다. 어? 하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이 또렷한 데다가 오래 앉아 있어 허리가 뻐근한 걸 빼면 아픈 곳도 없었습니다.


운동을 하면 놀 때 티 난다더니, 바로 이런 뜻이었나 봅니다. 운동을 시작하고 조금씩 강도를 높이느라 미처 몰랐는데 운동을 쉬어보니 제 체력이 전보다 훨씬 좋아진 게 느껴졌습니다. 마감을 마치면 찾아오던 원인 불명의 몸살도 사라졌습니다. 예전의 그 몸살은 '이제 제발 그만 쉬어주겠니'하는 몸의 구조 요청이었던 겁니다.




저는 신이 났습니다.

체력이 붙으니 운동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스쿼트 한 개도 제대로 못하던 제가 하루에 100개를 거뜬히 하게 되고, 무게를 늘리고, 조금 더 근육을 늘려보고 싶은 마음에 단백질을 챙겨 먹게 되었습니다. 주구장창 헬스만 다니다가 요가를 해봤는데 코어 힘이 좋아서 동작이 잘 만들어진다는 쌤의 칭찬에 으쓱해지기도 했습니다. 러닝이 유행한다는 말에 동네 한 바퀴를 뛰어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달리기가 그렇게 즐겁고 상쾌한 것일 줄이야! 예쁜 옷을 차려입고 코트에 나가는 친구의 인스타 스토리 사진을 보고 냉큼 테니스 레슨을 등록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루에 4시간씩 주 5~6일 운동 하는 미친 짓을 시작했습니다. 약속이 있거나 월경 때문에 운동을 못하는 날은 만보씩 걷기라도 했습니다. 그 즈음에는 스스로가 작가인지 생활 체육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당연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뭐든 과하면 좋지 않다는 걸 그렇게 겪고도 배우질 못했습니다. 월경 주기가 뒤틀렸고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종일 멍했고 가슴이 답답하고 무언가에 짓눌린듯 힘에 겨웠습니다. 등에 보이지 않는 짐을 잔뜩 지고서 살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휴식이 필요해서였습니다. 매일 두 가지 운동을 하고 전후 스트레칭까지 마치면 이동 시간이나 씻는 시간을 포함해 네 시간씩 써야했는데, 그러고서도 글을 쓰고 살림까지 했으니 저는 매일 매 시간 바짝 긴장을 놓지 못했고 제대로 된 휴식 역시 취할 수 없었던 거에요. 그저 좋은 거 먹고 운동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휴식까지 챙겨야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야 운동도 글쓰기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거였습니다.


이후 저는 루틴에 "일부러" 그리고 "반드시" 휴식 시간을 포함시켰습니다.


요약해서 썼지만 생각보다 지난하고 복잡한 시간이었습니다. 밤 운동과 오후 운동을 거쳐 오전으로 운동 시간을 고정하기까지 2년 반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언제 어떤 휴식을 해야 내가 충분이 쉬었다고 느낄 수 있는지 역시 1년 가까이 고민해오고 있습니다. 다른 프리랜서들의 로틴을 참고하거나 흉내내보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사는 지역, 취향, 가족 구성원 등에 따라 편차가 클 수 밖에 없어 직접 루틴을 짜고 살아보면서 자신에 맞게 변형해 나가는 수 밖에 없더라고요.




루틴의 장점은 안정성에 있습니다. 아프거나 바쁜 일정에 무리를 해서 잠시 흔들리더라도 루틴으로 돌아가면 다시 삶의 중심을 찾을 수 있거든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일종의 "집"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나에게 맞는 루틴을 찾는다는 건 오랜시간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과 같고 루틴이 존재한다는 건 언제든 다시 건강하고 편안해 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앞서 직장인의 장점이 월급이라는 듯 썼지만 저는 고정된 루틴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직장인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해가 뜰 때 일어나고, 점심 시간에 밥을 먹는다는 건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와 같습니다. 과거 누군가가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출퇴근 시간과 식사 시간을 지켜온 이유를, 직접 루틴을 만들고서야 알 것 같았습니다.


근로기준법은 프리랜서 작가인 제게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저를 고용한 건 저였고 저를 일하게 하는 것 역시 저였으므로 저를 지키는 일 역시 저 스스로 해야했습니다. 알람 없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매일을 주말처럼 사는 삶이 좋아보였고 실제로도 매우 좋은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잃는 것이 건강이었고 더는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감기에 걸렸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마흔을 눈앞에 두었지만 지금의 저는 20년 전의 저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활기찹니다. 전보다 더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오늘 쓴 것처럼 내일 역시 글을 쓰는 데 별 다른 문제가 없으리라 여깁니다. 이보다 더 선물 같은 일이 어디있을까요.


저는 아무때나 일어나 아무거나 먹으며 글을 쓰던 때보다 오전 7시에 일어나 통밀 식빵에 계란후라이와 구운 방울토마토를 얹어 먹으며 글을 쓰는 오늘이 훨씬 더 행복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이런 기쁨을 다른 분들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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