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집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보태어질 작은 증명이 될 수 있을까>
매번 의지와 싸우고 있어. 함께이고 싶을 때 더욱이 혼자인 것도. 혼자로 영영 괜찮겠다 싶으면 약속을 만드는 것도. 어느 쪽이나 상관없다는 마음가짐도 마찬가지야. 그런 마음을 먹는 내가 싫어서 그래. 적당한 망각과 견딜 만큼의 생생함이 필요하다고 봐. 너무 잊어버리면 끔찍해지고 지나치게 생생하면 내가 나를 지나쳐 버려. 그렇게 된 곳에서 무언가를 귀하게 여기던 시선은 오간 데 없고 전부 스러져간다는 사실만 떠올리게 되는 거야.
살기가 버거워서 어떻게든 무뎌지길 바랐던 적이 있다.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거나 아주 먼 미래라는 생각에 한참 절망하다가, 결국 고개를 들고 지나간 추억을 촘촘히 살피며 이제는 나와 무관한 이들을 갈수록 이해하기도 했다. 나의 사연과 나의 역사 속에서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었으나, 되짚어볼수록 이해는 나를 떠나 그들의 것이 되어갔다. 그러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나에게 최선을 다했구나. 아낌없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었구나. 그러자 일말의 억울함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한 그들이 나를 찾을 일은 이제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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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집,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보태어질 작은 증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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