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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 Oct 23. 2022

없음의 만약

지나오지 못한 여전을

다음이라 부르기로 해


그러나

다음의 다음이란 게 있다면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보태어질 작은 증명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게 될 수가 있을까


없음은 없음인데


펜 하나가 없어서

버리지 못해 가방에 꽂아 둔 서류봉투에

연필로

글자를


그어대고 있었다

아무 도움도 바라지 않을 때

필요한

이나

것이

생기면


혼자선 영영 불충분인 무언가 단단히 생겨난다는 건

말라서 눌러붙거나

불어터지거나


차이는


편지를 남긴 홍대의 어느 술집에 이제 나도 가질 않고 너도 그들도 그러니까 화자도 대상도 없는 편지를

누군가 읽고

말을 줄여야지 말수를 줄여야 돼

탁한 희망이 빠져나가지 않게


기꺼이 반복되지 않게


붙들어 놓고 있다


무사히라는 말을 매일 하는 사람은 무사하지 못한 사람

언제 사라질지 고민하며 쌓는 하루와


하루

할 일을 끝내면 할 일이 생긴다

방해가 될까 미안해서 흐려지지 못하고

할 일을 마치면 다시 할 일이


흐름이 끊어졌을 때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을 상상

끝까지 간다는 선택지는 사라진 지 오래이고

바라지 않는다만


역시 없음은

없음이어서

세상에 없는 너를 기억하는 건

없음이 아니라 나여서


나는 너의

헛되지 않을 유실물 보관소여야 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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