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한국에서 보낸 게 3년 만이다. 1년 반 만에 돌아간 집에서 마음 편히 쉬었다. 외국 생활의 설렘은 가시고 피로와 불안이 잦아져서 적절한 때에 필요한 휴식이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 동네에는 익숙한 곳에 도서관이 있고 병원도 있고 가족과 친구들도 있었다. 의사 선생님들이 거의 친척어른과 똑같이 나를 반겨주었다. 친구들은 언제나 그대로인 듯 익숙하게 반가웠다. 부모님은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 주신다. 답답함이 사라져서 좋았다.
그래도 프랑스에는 없지만 한국에는 많은 것들이 새로 생겨나서 놀라웠다. 서울이 너무 낯선 도시가 되었다. 내가 나로서 생활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어쩌면 내가 머물 곳은 확고하게 두 나라 중 하나로만 정할 수 없고 이제 나는 경계에 머물고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곳에 도착하면 다른 곳이 금방 그리워진다. 앞으로 한동안 서울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래도 두 곳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자립하는 어른의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올해는 내 힘으로 이루는 것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너무 받고 있는 것이 많다.
짧은 일정으로 돌아와야 해서 아쉽다. 그래도 하루를 온전히 내 힘으로 보내고 글을 쓰고 생각할 힘을 얻고 왔다. 이제는 나만 잘하면 된다. 꾸준하게 할 일을 마무리 짓는 하루들을 보내고 싶다.
P.S : 집안 유물들을 뒤져보다 파리에서 수목도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해의 변화를 또렷하게 기억하기 위해 나무의 잎과 꽃의 변화와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파리를 사랑해보고 싶다. 공원과 숲의 나무들을 유심히 자주 바라보아야 한다. 15년 전의 수업과제였지만 수목도감을 만든 건 몇 안 되는 뜻깊은 일 중의 하나였다. 한 해의 기록을 완성하고 나면 한국과 프랑스의 나무를 동시에 기억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