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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B Apr 28. 2022

유학생의 자존심 내려놓는 법

프랑스 교수님에게 팩폭을 맞았을 때

늘 느리지만 이번 학기는 지난 학기보다 한 가지는 나아졌다. 수업 2개의 과제 제출을 미루지 않고 제 때에 내고 있다. 여전히 지난 학기의 과제를 미처 내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완벽함을 기하지 않는 것은 미루기(Procrastination)를 극복하고 목표한 행동을 시작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한데 이번에 나는 너무 '시작'에만 의의를 두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슐라르의 지속의 변증법 수업의 과제를 미루고 미루다가 마침 제출 이틀 전부터 몸이 너무 아팠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지만 친구가 이 교수님은 절대로 제출 기한 이후에 낸 과제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부족한 불어 실력으로 5시간 동안 5쪽을 써낸 부족한 과제를 보냈다. 책에 기반하기보다는 인상 비판으로 칸트의 인과성과 도식과 베르그손의 " 물질과 기억"의 기본적인 주장, 그리고 바슐라르의 변증법적 지속 개념과의 얕은 비교들로 채워서 냈다. 빈틈이 많고 완성되지 못한 과제를 마감 기한 30분 전에 친구에게 프랑스어 교정을 부탁했고 친구는 최선을 다해서 틀린 맞춤법을 고친 후 교수님께 대신 보내줬다.


동생이지만 내게는 언니 같은 친구는 잘 썼다고 나를 격려해줬고 나는 그저 제시간에 끝내서 다행이다라고 답했다. 수업 종강일에 메일이 왔는데 교수님은 코멘트와 함께 과제의 점수를 알려주었다. 내 점수는 살면서 여지껐 받아보지 못한 낮은 점수였고 20점 만점의 7점이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니 35점이다. 점수보다 더 충격을 받은 건 선생님의 평가였는데, 단순히 프랑스어만이 문제가 아니라 석사 수준의 보고서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험을 봐서 13점 이상을 받으면(20점 만점) 재수강(rattrapage)을 안 할 수 있지만 솔직히 그 정도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한 번 더 써도 되냐고 여쭈어 보았는데, 선생님은 다른 프랑스 학생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원칙적으로 안되지만 일주일 내에 선생님이 정한 주제인 수직적 시간(le temps vertical)으로 써서 내면 인정해주겠다고 말했다.


나의 또 다른 선생님인 친구는 다시 나를 도와줬다. 수직적 시간에 대한 요약도 보내주었고 나는 이번에는 색인을 뒤져 해당 부분의 쪽수를 표시해가며, 주변 개념들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문제는 없었는데 일주일의 마감기한이 다가올수록 석사 수준이 아니라는 선생님의 말이 어느 순간 강하게 마음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석사 논문도 동일한 문제로 퀄리티도 그렇고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는데 지도교수님의 도움으로 겨우 끝냈다. 과거의 나처럼 이번에도 오늘의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마음이 무거워진 후에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우울이 너무 깊어졌다.


이런 마음의 슬픔과 그늘에서 최선의 방법은 무조건 작게나마 시작해보는 것이고 걱정과 어두운 감정을 되새기는 것은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한국에 계신 정신과 선생님도 해주시던 말이었지만 나의 정신적인 의지와 계획은 결코 내 무거워진 마음을 혼자서 일으키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한 탓이었다.


회피의 순간이 시작됐다. SNS도 들어갈 수 없었고, 휴대폰도 켤 수가 없었다. 하루를 온전히 생각에만 잠기다가 계속 괜찮냐고 연락한 친구에게 드디어 다음 날 연락을 했다. 친구는 집에 와서 자신이 한 음식을 주려 했지만 무기력한 며칠 사이에 치우지 못한 집으로 부르는 것은 또 자존심이 상하여서 생 라자르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내게 꽃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았다. 친구가 부케를 선물할 것 같아서 나는 정원과 공원에서 보는 꽃으로 충분하다고 답했다.


친구는 내게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꽃망울로 가득한 화분 하나와 바질 화분 하나를 선물해 주었다. 석사 논문에 시험 전에 바쁜 와중에도 하루 온종일 나를 일으키려고 해주었다. 하루를 같이 보낸 탓에 나는 스스로 일으키기 벅찼던 내 마음을 평소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우리는 배우는 과정 중에 있지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내가 좋은 평가를 받은 수업도 있었고 이거 하나로 나를 정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내가 프랑스로 유학 와서 공부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해줬다. 친구의 말들도 구겨진 나를 필 수 있었다.


그깟 말이 무어라고 마음이 무거워지고 가벼워져서 움직였던 것일까


프랑스에서 느리게 논문을 읽고 느리게 글을 쓰는 것은 매일 조금씩 금이 가는 일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단단한 벽을 깨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조금 금이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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