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40분 걸리는데 가끔 배차 간격 때문에 50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새해 결심으로 지각을 덜하자고 생각하고 10분이나 20분 정도 빨리 집을 나섰다.
하지만 역에 표시된 6호선에 노란 경고표시가 마침내 발길을 붙잡았다. 신호 기계 고장으로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읽는 도중에 바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다시 초록색의 6호선 표시가 제대로 작동했다. 에스컬레이터에 내리자마자 열차도 바로 도착했고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RER로 환승하기 위해 샤를 드 골 에뜨왈에 도착하자 심상치 않은 메시지가 보였다. 보통 3분 걸리는 환승구간 표시에 내가 도착하는 낭테르 대학 역에서 분실된 짐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1시 반부터 운행이 재개된다는 소식이었다.
친구는 역에서 한 정거장 전인 낭테르 경시청에 있는데 걸어서 간다고 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브런치 글쓰기 알림을 받고 특종처럼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참 자주 있다.
마침 읽고 있는 책이 가스통 바슐라르의 지속의 변증법이다. 시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속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베르그손의 주장에 맞서 심리적 인과성에는 지속이 아니라 휴식이, 존재에는 빈틈이 존재한다고 개별의 고유한 리듬에서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하철에서 앉다가 역에서 기다리며 책을 보았다. 휴식이 많고 존재의 빈틈을 너무 많이 보여주는 프랑스 RATP(지하철 공사)의 리듬을 따르는 건 바슐라르 독해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 마치 금방 수리된 것처럼 열차가 움직이더니 라데팡스에 내려다 주고는 버스를 타란다. 나는 라투르의 인류학과 과학사회학 수업을 듣고 싶었는데 오늘은 힘들 것 같았지만 어쨌든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나보다 먼저 걸어서 도착한 친구가 학교에서 쉬고 있는 양떼사진을 보내줬다. 나만 급한 거였지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 거였다. 아쉬운 건 귀여운 양들을 직접 볼 시간 없이 수업을 바로 들으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또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