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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B Oct 31. 2022

30대에 뒤늦게 프랑스 고등학생이 되고 싶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바람이 컸던 하루

늦잠을 한껏 잔 일요일 오후에 파리의 서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전공 책이 있는 코너가 아니라 중고등학생들 문제집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가서 고교 프랑스어 책과 내년 입시 대비 문제집을 샀다. 올해 나는 삽십대 후반에 들어섰다. 뒤늦게 프랑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은 난 파리의 어느 대학의 석사생이다. 학기가 끝나고 내가 석사 수준에 미달한다는 한 교수의 평가 때문에 제대로 실력을 쌓겠다는 오기로 서점에 들렀던 것이다. 프랑스어도 문제라는 평가 때문에 며칠 고민하다가 프랑스 고등학생처럼 공부해보기로 했다.


프랑스어를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은 몰리에르의 언어이다. 영어가 셰익스피어의 언어인 것처럼 말이다. 몰리에르를 몰라서 프랑스 고등학생이라면 다 아는 희곡에 나온 대사를 인용한 교수님의 농담에 나는 이해할 수 없어서 웃을 수가 없었다. 다들 웃겨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그 순간에 나도 따라서 웃고 싶었다.


프랑스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면서 유명한 소설가, 시인, 희곡작가, 철학자, 사회학자들의 이론과 글들을 배운다. 내가 학교 입학을 위해 급히 준비했던 프랑스어 자격시험은 대학 입학자격으로는 충분했지만 정작 이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배워온 문화적 전통을 따라가는 것은 보장해주지 못했다.


수많은 사상가들의 이론을 이해하고 프랑스 고교생들은 ‘바칼로레아’라는 논술시험을 준비한다. 특히 인문학, 경제 사회, 과학 등 어느 전공을 막론하고 철학 시험을 필수이다. 이들이 시험 당일 4시간 동안 답해야 하는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다. ‘내가 권리를 가진 모든 것들이 다 정당한가?’,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가?’, ‘문화가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가?’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논술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방법론도 중요하게 여긴다. 일반적인 사실에서부터 시작하여 문제를 발견하고 모순되는 지점들이 있음을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해야 하는 건지 빈틈없이 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형식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제대로 쓰지 못했던 내 글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았던 것은 당연하다.


철학 교사 시험을 준비했던 프랑스인 친구는 두 학자를 비교하는 내 논문에서 둘의 차이점을 먼저 언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순서대로 말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 다음에 다시 이 둘을 엮는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어느 지점에서 이 둘이 갈라지는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공통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글쓰기의 도입부부터 색달랐다. 학문적 규범과 문화를 모르는 나는 30대에 다시 10대 후반으로 이후에 내가 같이 공부하는 20대 초중반의 프랑스 학생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뒤늦은 배움을 따라가기 위해서 조금씩 프랑스 고등학생의 문제집을 수시로 보면서 프랑스식 논증과 글쓰기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프랑스의 청춘이 배움을 따라가는 것은 조금도 어색한 일은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수업을 청강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질문하는 백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자주 보았다. 지도교수님의 한 학기 마지막 수업에서 나는 70대는 넘어 보이는 백발의 어르신과 함께 생물학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철학의 범주들을 채우는 퀴즈를 풀었다. 수업이 끝난 후 그분을 교수님께 보고서를 내려는 파릇한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줄을 섰다. 그분이 이제 철학과 석사 1년 차이다.


내가 보내지 못한 시간과 아쉬움을 채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공부하는 것은 다시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성장은 청춘의 특권이다. 30대이든 70대이든 혹은 그 이상이든 배우는 열망을 가진 이는 계속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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