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이자 작가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어릴 때 가장 즐거웠던 일을 떠올려 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흥미를 느껴 매일같이 반복했던 일. 내게는 글자를 읽는 일이 그랬다. 빳빳한 새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설레었고, 좋아하는 책은 수십 번 넘게 읽었다. 책뿐만 아니라 시리얼 박스에 적혀있는 성분표, 물건에 딸려오는 제품 소개서, 아빠가 보시는 신문에 흥미로워 보이는 기사,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해도 눈앞에 보이는 글은 모조리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글자는 없어지지 않고 늘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읽고 또 읽었을까. 이 글을 쓴 이와, 또는 소설 속 어떤 이와 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아서였을까.
2022년 4월, 자신을 '피아노에 관심이 많은' 한 출판사의 편집자라고 소개한 이로부터 이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제가 피아노를 좋아해서 레슨도 받고 있는데, 선생님의 유튜브를 잘 보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처음 시작하는 성인',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는 취미생'을 타깃을 한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글을 쓸 수 있는 피아노 연주자/교육자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선생님의 글을 본 적이 없고, 글을 쓰실 의향이 있으신지도 모르지만 선생님 의향부터 여쭤봅니다."
나는 과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피아노 듣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피아노 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듯 글을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여러 고민을 앉고 답장을 했다.
"제가 자신 있고 열정 있는 분야로 글을 쓴다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미 나와 있는 피아노 관련 책들과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되네요. 출판에 있어서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어 망설여지는데 며칠 생각해 보겠습니다."
며칠 후 나는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샘플 원고를 쓰고 목차를 구성하고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받았다. 이후에 할 일은 시간을 내어 백지 앞에 매일 앉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처음이었지만 매일의 피아노 연습이 몸에 밴 나에게 무척 익숙한 느낌이었다.
지금껏 쉬지 않고 피아노를 쳐오며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 누군가 물으면 매일 연습하는 일이라 답할 것이다. 정말 단 하루도 연습을 하지 않은 날이 없냐 또 묻는다면 여행을 가거나 큰 연주가 끝난 다음 날이라던가 몸이 많이 아픈 날들은 연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날들은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이 나를 따라다녀 이럴 거면 차라리 연습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내게 피아노 연습 하는 일은 매일 세수하고 양치하고 밥 먹는 일처럼 매일 해야 하는 일로 몸에 각인되었다.
짧은 한 권의 책을 써 본 경험으로 내가 얻은 건 글 쓰는 일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다. 글을 쓰는 일은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고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도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완벽히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지도 않는 일이라 하루키는 말했다. 소설 쓰는 일에 대해 한 말이지만 피아노 연습할 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해 주어 공감이 되었다. 매일 열심히 해도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다고 말해주지 않는 일을 매일 반복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근사하고 철학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피아노 앞에 앉히는 강력한 힘은 몇 주 뒤에 있을 연주, 누군가와의 약속, 이미 받은 돈, 그리고 오랜 세월 몸속에 각인된 본능과 같은 것들이다.
예술가라 칭하기엔 술도 못 마시고 춤추고 노래할 줄 모르고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찝찝해하며, 성실한 것 같지만 갑자기 연주를 시키면 당황하는 나를 부끄러이 여긴 적이 있다.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춤으로 노래로 에너지를 다 발산해도 다음 날 기가 막힌 연주를 해내는 이들을 볼 때면 아 저런 게 아티스트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 꿈은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므로, 피아노 연습으로 단련된 무거운 엉덩이가 싫지만은 않다. 글을 쓸 때는 내 근육이 기억하는 성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진 못했어도 피아노 덕을 톡톡히 보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