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는데 좀 바빴다.

by 연서인


엄마의 하루는 단조롭다고들 말한다.

매일 반복, 예측 가능 그리고 특별한 사건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 맞는 말이다. 나는 매일 거의 같은 일을 한다.

다만 이를 '엄마는 애들 학교 가면 하는 일 없잖아?'라고 하기엔

내 숨이 너무 찬다.



숙면을 정리하라는 아침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면 난 새벽의 여명따위 즐길 시간 없이 정해진 시간 안에 효율을 따져가며 기능을 중시하는

인간로봇이 되어버린다.


전날 불려둔 쌀을 밥통에 넣고 취사버튼을 누른다. 찰진 밥이 완성되기까지 대략 30분.


그 사이 국을 끓이고 반찬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과 몸에 좋은 것 사이에서 짧은

협상을 한다. 물론 늘 내가 지지만. 일단 먹여야 한다는 강박이 냉장고에 있는 소시지로 손을 뻗게 한다.


한 상이 차려지면 아 아 목소리를 다듬는다. 이건 연기가 아니라 생존기술이다.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아이들은 아직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시간이 그런 걸 기다려주던가. 비몽사몽인 아이를

식탁에 앉혀 한 숟갈 떠먹인다. 제 시간에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이다. 이건 육아가 아니라 일정 관리다.

그나마 다행인건, 남의편은 알아서 준비한다. 아침은 건강식 음료 하나 챙겨간다. 손일거리 하나 줄인 셈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와~"


[탕]

현관문이 닫히고 센서등이 꺼지면서 집에는 고요함과 적막함이 동시에 몰려온다.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이 이시간이겠지? 아무도 없는 비어있는 시간.

하지만 이 시간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잠시 호출 대기 중일 뿐이다.




"어. 현서엄마~"


엄마들 사이의 대화는 대체로 평화롭다. 웃고 맞장구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각자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비교가 끝나있다. 아이 이야기지만 결국 나에 대한 평가다.

말은 부드럽고, 계산은 빠르다.


잠깐 주어지는 혼자만의 시간.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에 나는 쉰다기보다 쓸 수 있을 만큼의 나를 미리 써둔다. 곧 다시 바빠질 걸 알고 있으니까.



띡, 띡, 띡.


숨 한번 고르고 나니 아이들이 들어왔다. 짧은 보폭으로 달려와 안기고 오자마자 조잘조잘 온갖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리고 본능대로 움직이는 아이들은 이야기하는 도중에 눈에 띄는 장난감을 손에 쥐고 서로

이야기 하느라 바쁘다.


그래. 원래 애들은 집중력이 20분이랬어. 충분히 이해해.


자, 정신차리고 애들 옷과 가방부터 정리해보자.

책가방을 열고 알림장을 확인하고 필통 안을 검사한다. 오늘은 지우개를 얼마나 조각해 놓았을까.

옷은 찢어진 데가 없을까.


자기주도는 아직 먼 이야기다.


아이들과 투닥거리다보니 어느 새 저녁이다. 미리 준비해 둔다고 해도 저녁은 늘 최소 한시간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어벤져스가 되어 집안을 훼집어놓기 시작한다. 주방이며, 식탁 밑이며, 소파 위를 점령하는 무법자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 또 나의 미간에 주름이 하나

더 늘어난다.


겨우 차린 저녁상에 아이가 밥투정을 부린다.


"또 생선이야?

이제 그만 좀 먹고 싶다.."


저 복에 겨운 소리 보소. 내가 너무 편한 생활을 제공했을까. 결핍을 줘야 했던 걸까.

그래도 먹기는 하니 오늘은 특별히 봐줄게.


한 차례 식사가 끝나고 정리를 하니 남편이 퇴근한다.


"밥은?"

"아직"


집밥이 최고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참 미안하지만...

가끔은 정말 먹고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건 사랑과는 별개의 문제다.


저녁시간은 유독 빠르다. 씻기고, 말리고, 거실 정리하고, 책을 읽고 토닥이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10시가 넘어 있다.


그제서야 나의 하루가 보이기 시작한다.


설명할 만한 사건은 없었다. 어디 다녀온 것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성취도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은 정확히 알고 있다.

오늘 하루도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는 걸.


아무 일도 없었는데,

온종일

멈추지 않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