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을 위로하는 말에 능숙하다.
그게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해 왔다.
굳이 직접적으로 '나는 너를 이만큼 생각하고 있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나만의 표현방식이다.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온다.
회사 이야기, 남편 이야기, 아이 이야기.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겪어본 적 없는 일에도, 마치 오래 살아본 사람처럼.
"그럴 수 있지."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말을 하면서도 안다.
머릿속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 역시
상대가 지금 당장 듣고 싶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고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평판이 좋다.
정확히 말하면 미움받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남의 인생에는 관대하다.
왜냐하면 내가 책임져야 할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실패를 내가 수습하지 않아도 되고,
그들의 정체가 내 하루를 망치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쉽게 괜찮다고 말한다.
쉽게 이해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이해하기보단
내 일이 아닌데 뭐, 라는 생각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날 운동이 잘 안 됐다.
손은 굳고, 타이밍이 계속 늦었다. 같은 실수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머리는 알고 있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맞은편에 서 있던 사람과 자꾸 비교가 되었다.
그는 나보다 구력이 길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주변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그 정도면 잘하는 거라고 하지만,
내 속은 시끄러웠다.
잘한다는 말이 싫었던 게 아니라
그 말로 이 상황을 덮어버리는 게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잘 치는 게 아니라,
내가 아직 이 정도인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이 기분이 싫었다.
집에 가는 길에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다.
'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지?'
그때 전화진동이 울린다.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친구였다.
논문에 진척이 없고, 방향이 흔들리고, 자신이 없어 보였다.
나는 습관처럼 질문을 던지고,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습관처럼 괜찮다는 말을 했다.
"과정이 중요한 거야. 지금도 충분해."
포장에 익숙한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운동하던 그때에 멈춰 있었다.
이럴 땐 전화라는 것이 참 다행이지 싶다.
그가 내 얼굴을 보고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다 무심코 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오늘은 좀 기분이 별로네."
말이 튀어나간 뒤, 순간 조용해졌다.
불편한 정적에 마치 규칙을 어긴 사람처럼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무슨 일인데?"
나는 별 거 아닌 이야기라는 식으로 말했다.
운동을 하는데, 계속 같은 데서 막히는 느낌,
다른 사람들은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그대로인 것 같은 기분.
"별 거 아니야. 그냥 내가 좀 예민한가 봐."
친구가 한참을 조용히 있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항상 너 얘기만 나오면 급하게 괜찮아지려고 해?"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남이 힘들다고 말하면 충분히 그 감정을
해소할 수 있게끔 기다려준다.
하지만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진다.
불편하다기보다는
들여다보면 안 될 마음을 들키게 될까 봐 두려웠을지도..
나는 나에게 그 쉬운 말조차 해주지 않는 참 가혹한 사람이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솔직해지길 미뤄놓는 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쉽게 건네는 '괜찮아, 이 정도도 충분해.' 라는 말을
정작 제일 필요한 나에겐 해주지 않는다.
끝까지 나를 보지 않으려 애쓴다.
늘 그래왔다.
남의 고통 앞에서는 오래 머물 수 있으면서도
내 마음 앞에서는 늘 말을 줄이고 서둘러 자리를 뜨는,
나는 사람을 위로할 때 나에게는 가장 비겁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