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시험은 없음을

속도에 대해 이야기하기

by 연시홍

이제 다섯 살인 윤이는 늘 빠른 아이였다. 또래보다 생일이 빠르고, 키도 한 뼘은 커서 친구들 사이에선 언니 같았다. 대근육, 소근육, 언어 발달까지 고르게 빨라서 10개월부터 걷기 시작했고, “벌써 이걸 해요?”라는 말을 또래 엄마들에게 자주 들었다. 아이의 성장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지만, 윤이가 잘 크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뿌듯하게 했다.


엄마 시험이 있고, 아이가 그 성적표라면 나는 지금까지 꽤 괜찮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섯 살쯤 되니, “잘 키우고 있다”는 말 뒤에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것이 아닌, 뭔가 다른 영역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건 엄마들 모임에서였다. 대화 주제가 자연스레 새로 다니기 시작한 학원, 누구는 한글을 얼마나 읽는지 같은 이야기로 흘러갔다.


윤이보다 생일이 늦은 친구가 벌써 한글 통글자를 다 떼고 혼자 책을 읽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윤이를 향한 내 시선에 비교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내가 책을 덜 읽어줘서인가?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있었는데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나? 아이의 드넓은 가능성을 나의 무관심으로 덮어버린 건 아닐지 불안했다. 이런 마음이 어쩌면, 많은 엄마들을 사교육으로 달려가게 만드는지 모른다.


아이마다 타고난 기질과 속도가 다른데도, 아이가 똑똑한 것이 부모가 잘 키웠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게 아닌 것을 알면서도, 왜 아이의 성취에 단순히 뿌듯함을 넘어 엄마로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엄마 시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성적표처럼 아이를 들여다보려는 마음과 싸울 뿐이다.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엄마 덕분에 아주 많은 것들을 배웠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낌없는 지원을 받은 맏딸로서, 피아노, 영어는 기본이고 수영, 리듬체조, 미술까지 안 배워본 것이 없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뭐든 시키면 잘해서 뿌듯했다고 했다.


하지만 다 잘하는 것은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것과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적당히 다 잘하니 하나에 집중하지 못했고, 혼자 하기보다는 학원에 의존하는 게 익숙해졌다. 결국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혼자 하는 힘을 갖기까지는 긴 시간의 성장통이 필요했다. 윤이도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육아는 장기 레이스라 결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 선택의 결과를 아이가 모두 성장한 20년, 30년 뒤에 볼 수 있다. 과연 미래의 나는 선택들을 후회하게 될까, 그럼에도 잘했다고 여기게 될까.


한글을 다 떼지 못했지만 꼬불꼬불한 글씨로 ‘사랑해’라고 쓴 편지를 전해주는 윤이를 보면서, 윤이만의 속도와 특별함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자신만의 속도를 품고 있는 것은 서른이 훌쩍 넘은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걸 종종 잊는다. 빛나는 사람들의 걸음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는 순간들이 여전히 있다.


우리에겐 각자의 속도와 자신만의 특별함을 믿는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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