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콘서트

단편소설

by 참새


엄마가 돌아가셨다.
특별한 유언도 유서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보니 부엌에 쓰러져 계셨다. 설거지를 하시다가 그대로 가신 모양이었다. 마음의 준비는 해두고 있었으므로 나는 별로 울지 않았다. 발인을 막 끝내고 유골함을 품에 안았을 때, 너무 따뜻해서 그때 좀 많이 울긴 했다. 어쨋든 엄마는 그토록 가보고 싶다던 제주바다에 뿌려졌다.
엄마는 유방암이셨다. 처음엔 2기였는데 병원비 문제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은 가슴까지 절제하셨다. 하지만 이미 암세포가 폐와 간에까지 전이되서 결국은 시한부판정을 받고 말았다. 병원에서는 이제 어쩔 도리가 없어서 남은 여생을 사시라고 퇴원을 권유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돈걱정부터 앞섰던 나는 솔직히 안도하고 말았다.

엄마가 퇴원하는 전날,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병원으로 좀 와달라는 거였다. 내일 퇴원인데 굳이 와달라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픈와중에도 그렇게 신경쓰던 내 대학출석까지 빠지고 오라는게 꺼림찍하기도 했지만 그냥 늘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던 엄마의 제멋대로병이 도졌다고 여겼다. 엄마는 검은 색 폴라티와 청바지를 챙겨와달라 부탁했고 그 밖에도 벚꽃이 다 져버렸다는 둥, 개를 키워보면 어떻겠냐는 둥, 쓸데없는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이것저것 챙겨서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휴게실에 있었다. 환자복과 비니를 쓰고 있던 엄마는 친하게 지내던 예지와 예지어머니와 함께 휴게실에서 김밥을 말고 있었다. 테이블에 가지런히 펼쳐진 재료들은 족히 50인분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양이었다. 아픈 사람들이 휴게실을 전부 차지해서 한가롭게 김밥마는 것도 우스운 꼴이었지만 이 많은 양의 재료들을 굳이 힘들게 병원까지 가지고 올 이유가 대체 어디있는지, 그 꼴을 보고 나는 화가 치밀었다.

"...이거 다 뭔데."

"저녁 때 사람들 나눠줄라고 만들고 있지~ 점심 안먹었지? 너도 하나 먹어."

"참나, 돈을 왜 허튼데다 써? 사람들 김밥 먹여서 뭐하게."

내가 정색하자 세 사람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떳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에 아주머니는 나를 밖으로 데리고 가서 타일렀다. 예지가 김밥을 만들어보고 싶어해서 부탁한 거였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후회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다시 휴게실에 들어갔을때는 엄마가 예지에게 김밥 마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옆에 두고 앉아서 한마디를 툭 뱉었다.

"엄마는 평생을 김밥 말았으면서 병원에서까지 이러고 싶어?"

"..."

내가 화를 내면 엄마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져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내 불같은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사과는 못하겠고 나는 구석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테이블 위의 김밥재료들은 하나같이 익숙한 것들이었다. 지금은 가게를 정리했지만 20여년간을 김밥집 아들로 살아왔는데 우리집에 쓰던 재료들을 내가 못 알아볼리 없었다. 보여지는 밥의 점도나 질감도 딱 엄마가 만든 거였다. 밥솥은 대체 어디서 빌려왔으며 그 많은 밥을 짓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엄마를 보면 나는 늘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깨뜨린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아주머니가 몇마디를 던졌으나 받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스박스가 호일로 감싼 김밥으로 꽉 채워지자 엄마와 아주머니는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싣고 가버렸다. 나 혼자 뒷정리를 하는 동안 늘 애교많던 일곱살 예지는 내가 무서워서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예지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까 소리쳐서 미안. 예지 많이 놀랐어?"

"오빠는 왜 올 때마다 화를 내?"

"미안해."

"아줌마 어제도 많이 아팟단 말야."

"...그랬어?"

그 말에 나는 비로소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는 엄마가 놓고 간 김밥 한 줄이 덩그러니 있었다. 내 점심인 모양이었다.

예지를 병실에 데려다주고 오다가 복도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옷은 가지고 왔어?"

나는 말없이 손에 든 가방을 한번 들썩였다. 엄마는 그것을 받아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후. 이거 안들어간다? 살쪘나?"

"...병원밥이 맛있었나 보네."

"난 남이 해주는 건 다 맛있어."

"갑자기 옷은 왜 입는데. 어디 가?"

엄마는 화장실에서 한참을 부스럭거렸고 내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할 때쯤 짠하고 나타났다. 엄마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가발을 쓰고 있었다. 화장도 했다. 새빨간 립스틱에 속눈썹까지 붙여선 처음엔 못알아봤었다. 무엇보다 밋밋해야할 가슴이 다시 솟아 있었다. 나는 인상을 대번에 찌뿌러뜨렸다.

"뭐, 뭐야?"

"헤헤. 감쪽같지?"

"엄마 남자 생겼어?"

"남자는 무슨! 너 그러고 있지말고 밖에 쉼터에 예지아빠 있을 거야. 가서 좀 도와줘."

"도와주긴 뭘 도와."

"가보면 알아. 얼른~!"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는 기어코 나를 엘레베이터에 밀어넣었다. 병원 뒤편에 자리한 쉼터에는 아저씨가 혼자 무대를 셋팅하고 있었다. 온 바닥에 벚꽃잎들이 낙옆처럼 굴러다니고 있었고 왼쪽에는 철제의자와 기타가, 중앙에는 마이크 스탠드, 오른쪽엔 드럼이 있었다. 그 위로는 '사랑하는 예지를 위한 별빛 콘서트' 라는 플랜카드가 나무 사이에 걸려있었다.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자 마침 잘 왔다며 앰프 연결하는 법을 나에게 물었다. 음악에 1도 관심 없던 내가 알리 없었지만 어찌어찌 도움을 드릴 순 있었다. 직업이 배선공이셨어서 그런지 조명기기는 혼자 척척 설치하셨다. 나는 곁에서 공구를 집어드릴 뿐 딱히 도와드릴 건 없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작고 귀여운 콘서트장이 마련되었다. 아저씨는 드럼의자에 앉아서 소리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예지를 위해서 밴드를 섭외하셨나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아저씨 드러머였어요?"

"하하! 어릴 때 잠깐 했었거든. 두 달 간 열심히 연습했다. 우리 예지 하늘나라 가기 전에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여줘야지."

"혹시 보컬이 우리 엄마에요?"

"응. 잘부르더만. 옛날에 밴드 했었다면서?"

솔직히 엄마가 잘부르는지 어떤지를 나는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딱 일반인보다 잘 부르는 정도였다. 우리집 앨범에는 엄마의 젊었을 적 사진이 많았기 때문에 옛날에 밴드활동을 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 사진들 대부분에 검정 폴라티를 입고 있었던 것 같다. 사진속의 엄마는 젊고 생기발랄한 스무살 아가씨였다. 밴드 멤버들과 함께 공연도 하고 술집도 가고 어깨동무도 하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온통 웃는 사진 뿐이었다. 몇몇의 사진 속에는 기타리스트였다던 아버지도 있었는데 내 성격이 이래먹은 걸 보면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건 나는 엄마가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종종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르곤 했었고 내 기억에 엄마는 그걸 단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홀에 손님이 있건 말건 마이크대신 숟가락을 붙잡고 좁아터진 주방에서 춤까지 추며 노래를 불러줬었다. 엄마는 영어로 된 팝송을 부를 수 있다는 걸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특히 리암 갤러거의 All you're dreaming of를 좋아했다. 그 노래는 내 어릴적 자장가였고 설거지를 할때에도 늘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창피할 때가 많았다.

"퇴원하고 뭐할 지는 생각해봤어?"

"제주에 가려구요."

"제주?"

"한번도 안가봤대요. 근데 생각보다 비싸던데요. 그 돈이면 차라리 일본을 갈까 했었는데 엄마는 무조건 제주바다를 봐야한대요. 하여간 고집은."

"바다 좋지. 엄마한테 잘해드려. 네가 몰라서 그렇지, 항상 네 걱정만 하더라."

"그걸 제가 왜 몰라요."

"임마. 엄마한테 잘해 드리라고."

"...그냥 좀, 답답해요."

"현우야."

"우리 엄마. 3개월도 못 산대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아저씨는 내 말 뜻을 이해했다는 듯이 더는 따지지 않았다. 아마 예지도 그 쯤 남았을 것이었다.
조율을 끝마친 아저씨는 나보고 기타리스트를 데리러 가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저씨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갔다. 복도에서부터 고성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황급히 목소리가 들리는 병실로 뛰어가자 엄마는 어떤 할아버지와 싸우고 있었다.

"망할 영감탱이가! 나이를 쳐드셨으면 곱게 쳐드셔야지!"

아주머니와 간호사 한분이 엄마를 뜯어말리고 있었고 나도 놀라서 엄마를 붙잡았다. 할아버지도 지지않고 엄마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엄마는 병실을 나오는 중에도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아주머니는 엄마를 타이르면서 나에게 가서 할아버지를 설득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대체 뭘 설득해야 하는지 하나도 관심 없었다. 나는 그 노인네가 엄마에게 '그러니까 돼질 병에 걸리지!'라고 소리쳤던 것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와 아주머니를 내려보내고 다 때려부실 기세로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내가 뭐라고 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엔 아저씨가 나를 말리느라 진땀을 뺏고 한 숨 돌리던 간호사들도 다시 와서 중재를 했다. 그러나 뜻 밖에도 나를 수그러들게 한 건 할아버지의 태도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욕짓거릴 일삼던 할아버지는 내가 내뱉는 말들에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가 동그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셨다. 나는 노인이 우는 걸 그때 처음봤다. 아저씨가 할아버지를 달래며 어찌된 영문인지를 물었다. 일단 할아버지의 말은 두서와 맥락이 전혀 없어 알아듣기가 힘들었는데. 요약하자면, 다 큰 아들 딸들에게 기타치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두 달 동안 죽기 살기로 연습했건만 막상 공연 당일이 되니까 아무도 오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말하는 중간 중간 소싯적에 통기타를 메고 전국팔도 안가본 곳이 없다느니, 기타 실력 하나로 동네 제일가던 담뱃가게 아가씨를 꼬셔서 장가를 갔었다느니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하셨다. 손짓발짓에 침까지 튀기며 열변을 토하시던 할아버지는 금세 다시 축 쳐져선 고갤 떨구고 자조적인 말을 중얼거렸다.

"자식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읎어."

할아버지의 서운함엔 관심없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할아버지의 하얗게 샌 정수리를 노려볼 뿐이었다. 딱히 콘서트를 안해도 상관 없었다. 엄마가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무조건 못하게 했을 것이다. 암에 걸린 사람에게 몇 시간이나 노랠 부르게 한다고? 예지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오히려 예지네 가족이 친분을 빌미로 우리 엄마를 이용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어찌됐건 아저씨는 할아버지를 설득하려 애썼다. 아저씨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할아버지는 나를 슬쩍 흘겨보더니 휴대폰을 침대 시트 위에 툭 던졌다. 도대체가 뭐하자는 건지 둘이 수상한 눈빛을 주고 받았고 아저씨는 그 휴대폰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보고 할아버지의 가족들에게 전화하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손사례를 쳤다. 할꺼면 아저씨가 하지 왜 나를 시키냐고 따졌지만 자기는 이미 여러번 해서 씨알도 안먹힌다는 것이었다. 끝까지 버티자 아저씨는 내가 휴학중이라는 걸 엄마에게 일르겠다고 협박했다. 같은 보호자로써 마음을 터놓고 얘기한 거였는데.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결국은 내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기냥 콱 죽어버렸다 그래!"

할아버지가 툭 툭 던지는 말들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아저씨는 나보고 의사인 척을 하라고 부추겼는데 우리는 그게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저씨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할아버지가 지금 뇌졸증으로 쓰러져서 수술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수술은 무조건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해서 반드시 와줄 거란 계산이었다.
그렇게 나는 팔자에도 없던 발연기를 해가며 할아버지의 큰아들, 작은 아들, 작은 딸, 막내 딸까지 총 네통을 전화했다. 할아버지의 식구들은 한결같이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냐며 하소연했다. 아무 상관없는 나한테 그러니 팍 짜증이 나서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치고는 대충 끊어버렸다. 할아버지는 그걸 오히려 마음에 들어했다.
재밋다고 웃어대는 할아버지와 아저씨가 꼴보기 싫어 나는 혼자 바깥으로 나와버렸다.
화를 삭이고 있을 줄 알았던 엄마는 내 속도 모르고 아주머니와 벤치에 앉아서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언제 데리고 왔는지 예지도 함께였다.
참 속도 좋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우유부단하고 변덕은 또 어찌나 심한지. 뭐, 손님들과 티격태격 하는 거야 백번도 넘게 봤지만 그래도 엄마가 진지하게 싸우는 걸 본 건 오랜만이었다. 내 성격은 어쩌면 엄마를 닮은 것도 같다.
내가 한 일곱살 쯤이었나. 그래. 딱 예지만할 때였을 것이다. 어렸을 적 우리 김밥집은 학원 골목에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꽤 잘 됐었다. 바쁜 학생들은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는 경우가 많았고 원체 오지랖 많은 엄마 성격에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그 때는 거의 저녁 장사였어서 한가한 낮에는 나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엄마에게는 학생들을 구경하는 게 낙이기도 했다. 노을지는 저녁마다 여학생 무리들이 깔깔거리며 지나갈때면 엄마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깥을 내다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맞은 편 미술학원에 승용차 한대가 정차해 있었다. 뒷좌석 차창이 열려 있었는데 거기서 말티즈 한마리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왠종일 개를 키우고 싶다며 졸라댔던 나는 김밥용 햄 몇가닥을 손에 들고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마냥 어렸던 나는 사납게 짖어대던 말티즈가 무섭지도 않았나 보다. 햄을 쑥 내밀자 말티즈는 얌전해져서 조용히 햄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아주아주 천천히 반대쪽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말티즈는 갑자기 아르릉거리더니 내 손을 콱 물었다. 너무 놀라고 아파서 대번에 울음이 터졌고 엄마가 뛰쳐나와 나를 감쌌다. 마침 승용차 주인이었던 아줌마도 학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고 있었다.
엄마와 아줌마는 대판 싸웠다. 개가 있는데 차창을 열어두면 어떡하냐느니, 애 간수를 어떻게 했냐느니, 손가락질에 막말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저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값비싼 명품백을 들고 있었던 그 아줌마는 어딘가 여유로운 태도와 비아냥이 있었고 후질구레한 당근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엄마는 별다른 논리도 근거도 없이 악에 받쳐 더 크게 소리지를 뿐이었다. 나는 그 때 전부 내 잘못이라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도 엄마는 피 한방울 안났던 내 손을 꽉 잡고 놓질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엄마와 싸웠던 그 아줌마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김이 있었던지 매출이 확 줄었다. 지나가던 고등학생 누나들한테 엿들은 말로는 엄마에 대해 않좋은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일곱살이어도 알 건 다 알았다.
엄마는 그 문제에 대해서 굽힐 줄을 몰랐고 날이 갈수록 경제사정은 않좋아졌다. 나중에는 월세를 낼 돈조차 없어서 우리는 학원가를 벗어나 도시 외각 후미진 곳으로 쫒겨나듯이 이사가야만 했다. 그 곳에서 엄마는 물류센터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김밥을 팔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김밥을 말았다. 그 후로 엄마는 노랠 부르는 게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나는 개를 혐오하게 되었다.

엄마가 노래를 마지막으로 부른 게 언제였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별안간 아저씨가 나와서 아주머니와 예지를 데리고 갔다. 엄마는 혼자 남았다. 괜히 분위기를 망칠까봐 멀리 서 있기만 했던 나는 쭈뼛쭈뼛 엄마에게 다가갔다. 내가 옆에 앉자 엄마는 노인네가 나이 먹고 나잇값을 못한다며 할아버지의 험담을 했다. 글쎄. 말은 저래놓고 금세 사이좋게 지낼 걸 나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한참 열을 내던 엄마는 갑자기 누군가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그 사람도 엄마를 알아보고 손을 크게 흔들고 갔다. 엄마는 헤실헤실 웃었다.
또 엄마는 손거울을 불쑥 꺼내더니 자기 얼굴을 메만지면서 베시시 웃어보였다. 근 2년 만에 원래 모습을 찾아서 기쁜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괜히 신경질을 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재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살 수도 있었을 거 아냐. 이게 뭐야. 돈은 돈대로 날리고 살지도 못하고."

"너 대학 보냈잖아. 그럼 됐지 모."

"가면 뭘 해. 엄마가 이런데 내가 공부가 됐겠어?"

순간 입이 굳었다. 나는 항상 주워담지 못할 말을 내뱉고 후회했다. 어리석게도 대학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칫 말이라도 잘못해서 병원비 때문에 휴학을 하고 택배를 뛰고 있다는 걸 들키는 날에는 사단이 날 것이었다. 다행이 엄마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

"벚꽃이 다 져삤네~."

"..."

"너가 봤어야 하는데. 얼마전까지 솜사탕처럼 풍성했었는데 말야. 요 며칠 사이에 죄다 떨어지지 뭐야? 하~롱 하롱. 얼마나 아름답던지!"

"아름답긴 개뿔... 하롱하롱은 또 뭐야. 우리나라에 그런 말이 있어?"

"하~롱 하롱. 아하하!"

엄마는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햇살이 반듯한 오후였다. 사람들은 떨어진 연분홍 꽃잎들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 다녔고 앙상해야 할 벚꽃나무는 벌써부터 파릇파릇한 잎새들이 뻔뻔스럽게 돋아나 있었다. 엄마가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리허설 같은 건 안하나 생각이 들 무렵 엄마는 그 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해야겠다며 또 어디론가 가버렸다. 보통은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나? 자꾸 나를 빙빙 돌리는 게 마음에 안들었다. 나는 병실로 올라가서 내일 아침 바로 떠날 수 있게 짐을 쌌다. 짐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었다. 속옷 몇벌과 가디건 한 벌, 화장품 몇 개, 손톱깎이 세트, 심심할 때 하라고 줬었던 내 게임기도 있었다.
저녁때 쓸 치약 칫솔만 남기고 모든 짐은 한 가방에 다 들어갔다. 단촐했다. 짐을 다 정리하고 잠깐 침대에 누워 쉬다가 지금쯤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을 아저씨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몸을 일으켰다.
엘레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을 선택한 것은, 올라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그냥 뭐랄까. 그냥, 그냥 기분 탓이었다.
엄마는 어두컴컴한 3층 계단에서 혼자 쪼그려앉아 있었다. 작별인사를 하고 온다더니. 엄마의 파리한 얼굴에는 말기암의 고통보다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그러나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옆에 쪼그려 앉았다.

"괜찮아?"

"응."

"약은."

"먹었지."

엄마는 갑자기 신경질을 냈다.

"우씨. 가슴 다 죽었네. 이거 터진거 아냐?"

"뭘 넣은 건데."

"단팥빵."

"가지가지한다. 그리고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원래 그 정도 아니었잖아."

"죽는다 진짜."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웃으니까 엄마도 따라 웃었다.

"아~ 바다 보고싶다."

"가고 싶으면 내일 바로 가도 되고."

"아니. 여름까지 기다릴래."

엄마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추위를 타는 것처럼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콘서트를 못하게 할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말기암의 통증은 한 번 찾아오면 그날은 여진처럼 하루종일을 시달려야만 했다. 잠을 재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엄마를 병실로 데려가서 이불을 푹 덮어주고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에 깨워주겠다고 약속했다. 엄마는 날 믿지 못하겠는지 약에 취해 몽롱한 눈을 하고 있으면서도 꼭 깨워달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그 와중에도 가발이 삐뚤어지지는 않았는지를 신경썼다.

혼자 쉼터로 나왔을 때는 아저씨와 예지가 풍선을 불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와 테이블을 세팅했다. 기다란 테이블 위로 사람들이 먹을 각종 과자들과 음료수가 한 박스씩 놓여졌고 아까 만들어뒀던 김밥도 아이스박스채로 올라갔다. 의자를 따로 구하지 못해서 관객들은 잔디밭에 철푸덕 앉아서 봐야만 했다. 그래도 예지를 위한 예쁜 공주님 의자가 따로 놓여져 있었다. 공연은 저녁 7시에서 밤 9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선곡표를 확인했을 때 예지가 좋아할만한 만화 주제가들과 엄마가 즐겨부르던 팝송 몇개, 할아버지가 골랐을 김광석의 노래도 서너개 있었다. 마지막 곡은 드럼 연주가 돋보이는 체리필터의 '오리날다'였다. 그날 밤 아저씨는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쳤을만큼 이 곡을 정말 완벽하게 연주하셨었다. 콘서트가 시작되려면 한 두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502호 할아버지는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기타를 매만지셨다. 할아버지의 기타소리는 어울리지 않게 어딘가 서글픈 데가 있었다. 옛날 연주기법 같았다. 기타소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서성였고 더러는 환자복에 링거대까지 끌고 온 사람도 있었다. 몸이 아파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병동 창가에 턱을 괴었다. 아주머니는 사람들에게 먹을 걸 나눠주셨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병원 창문마다 노을빛이 그득히 차올랐고 주차장에 줄지어 늘어선 자동차 보넷에도 노을이 넘실거렸다. 선선한 저녁 바람에 그나마 남아있던 벚꽃잎마저 하롱 하롱 떨어져 내렸다. 멀리서 어린아이가 할아버지를 크게 불렀다. 큰아들, 작은 아들, 작은 딸, 막내딸에 우르르 달려오는 어린 손자 손녀들까지 전부 할아버지의 식구들이었다. 할아버지는 기타를 연주하다 말고 손주들을 마중했다.
늙은 아들딸들이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고선 바빠죽겠는데 온 가족이 여기까지 와야겠냐며 역정을 냈다.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아버지는 함박 웃음이었다. 할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봤지? 이놈들이 다 내 재산이여."

앞니 없는 얼굴로 활짝 웃으시는데 얼마나 천진난만하시던지.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 손자에 예지까지 데려와 억지로 앉혀선 김광석의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노래하셨다. 60대 노부부 이야기. 저 기타소리에 홀딱 반해 시집을 왔다던 담뱃가게 아가씨가 저기 먼 하늘에서 웃고 계실 것만 같았다. 문득 달이 하얗게 떠 있었다. 태양은 달을 두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깊어진 하늘에 가로등 불빛들이 하나 둘씩 딩동거렸다. 슬슬 엄마를 데리러 가야했다. 조금 설레기도 했다. 어릴적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저 사람들도 분명히 엄마의 노랫소리를 좋아해줄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돌아갔을 때 엄마는 없었다. 잠깐 화장실에 간 것 같았다. 침대 정리가 하나도 안되어 있어서 나는 익숙한 한숨을 쉬었다. 엄마는 이불 게는 법을 전혀 몰랐다. 나는 옛날부터 엄마의 이불을 대신 게주곤 했다. 옛날 생각을 하면서 침대를 정리하다가 시트가 땀에 젖어 있는 걸 발견했다. 내가 밖에서 사람들과 시시덕거리는 동안 엄마는 여기서 혼자 아파했을 거였다. 나는 후회했다. 나는 늘 후회 뿐이다. 10분이 지나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왠일인지 전화도 받지 않았다. 길이 엇갈렸나 싶어서 쉼터로 내려갔을 때도 엄마는 없었다. 엄마를 찾던 나를 보고 예지 아주머니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했다. 지난번에 계단에서 엄마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고. 그걸 지금까지 말해주지 않았던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아주머니께 엇갈릴지 모르니 기다려달라 말하고 엄마를 찾으러 나섰다. 콘서트가 시작되기까지 30분이 남아 있었다. 아주머니의 말이 신경쓰여서 지하 주차장부터 옥상까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아픈 사람이 어딜 빨빨거리고 돌아다녀서 사람을 고생시키는지, 전화는 대체 왜 받지를 않는 건지, 각 층마다 여자 화장실을 멋대로 들어가 엄마를 외쳤다. 내 옷은 시트처럼 땀에 젖어가고 있었다. 다른 층의 간호사들은 엄마가 누군지도 잘 몰랐다. 자꾸 나쁜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의사새끼는 엄마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가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고통을 삼키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캄캄한 새벽에 혼자 전등을 켜고 김밥을 마는 모습도 떠올랐다. 내가 대학을 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엄마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개를 만지려 하지 않았다면, 아니 애초에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는 한평생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연애도 실컷 하고 음악도 실컷 하고 여행도 실컷 다니면서. 그토록 가보고 싶다던 제주바다에도 원없이 가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20여년을 주방 구석에서 김밥만 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콘서트장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이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나만 뛰어다니며 땀범벅이 되버린 것도, 엄마가 죽는다는데, 사람들이 한가롭게 모여 웃고 떠드는 것도, 이 따위 콘서트를 하는 것도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대체 어딜 간거냐고!!"

나는 휴대폰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콘서트장은 순식간에 정적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가족들도, 예지네 가족들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내 눈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람들의 놀란 얼굴들을 살피며 전부 다 꺼져버리라고, 제발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숨이 너무 차고 시야가 너무 흐렸다. 아주머니가 다가오며 뭔가 말씀하셨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곧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희미하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응급실 쪽에서 간호사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괜찮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을 때, 그 안도감이, 오랫동안 버텨왔던 둑을 무너뜨렸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다. 바보같이. 여기서 울어버리면 안된다고. 이때까지 버텨왔던 게 전부 소용없어질거라고. 그럼에도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내 허리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엄마가 이렇게나 키가 작은 사람이었나. 엄마는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아주면서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잘 봐.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엄마는 베시시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전혀 아팠던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무대까지 사뿐히 뛰어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들!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그 말을 끝으로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노랫소리가 밤하늘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어린 내 손을 잡고 주방에서 춤을 추던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날 밤은 총총한 별빛과 한줄기 달빛이 하늘에서 조명처럼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