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전거로 출근할 때 지나는 길에는 물이 좀 더러운 개울도 있고 잡초가 무성한 맨 땅이 있고 따가운 햇볕이 버거운지 목을 축 늘어뜨린 느티나무도 있고 그렇다. 옥수수나 감자라도 심어놨어야 할 여름에 잡초만 무성했던 밭에는 포크레인으로 얕게 파놓은 물웅덩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왠 커다란 곰인형 하나가 반신욕을 하듯 앉아있었다. 잔뜩 때가 탄 이 흰색 곰인형은 항상 길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곰인형의 시선을 느껴야만 했다. 가끔 감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기도 하고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것도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곳을 지나갈 때면 곰인형의 비웃음 섞인 시선에 나도 모르게 움찔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한낱 버려진 곰인형일 뿐이라고 외면했지만 어느 날 나는 웬일인지 그의 눈빛에 사로잡혀 사진을 찍어주었다. 길가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나에게끔 어떤 이타적인 감상에 빠지게 하였는데 그 후부터 나는 며칠간격으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그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지켜봐왔다.
그래봐야 그도 나도 변할 것 없이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어떤 날은 마른 풀 탑새기 하나가 허공을 유영하다 그의 머리 위로 안착해 머리칼이 되어주기도 했었다. 또 어떤 날은 귀여운 논병아리 가족이 그의 물웅덩이 안에서 목욕을 하고 가기도 했었다. 갈색이 완연한 가을날,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 맨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함께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감상하기도 했었다. 날은 점점 추워져 물웅덩이에 살얼음이 일다가 나중에는 꽝꽝 얼어붙어 그의 다리를 억지로 붙잡아놓았고, 눈 몇 송이를 품은 바람 한 가닥이 얼어붙은 그의 빙판 위에서 트리플 악셀을 뽐내기도 하였다. 해가 바뀐 1월 1일,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출근을 해야만 했던 그 날 아침은 눈 덮였던 온 세상이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날이 풀리자 얼음이 녹아 다시 맨 땅이 솟아나고 그의 손 주변에서부터 푸른빛이 일기 시작하더니 땅을 뒤덮었던 죽은 잡초들 속에서 서서히 푸른빛이 자라나 새로운 잡초밭이 되었고 물웅덩이 속에서도 듬성듬성 기다란 풀들이 목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봄이 왔었다. 날은 점점 더워졌고 게을러진 나는 시간 맞추기에만 급급해 그를 찍어주지도 않고 힘껏 페달을 밟을 때가 많아졌는데 그럴때마다 날파리들이 날라다녀 얼굴에 부딪치는 것이 참 성가시게도 했다. 하루가 너무 힘들었던 어느 퇴근길에는 그의 물웅덩이 안에서 함께 반신욕을 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때가 타고 더러워졌지만 그래도 물웅덩이에 앉아서 온전히 나를 바라봐주었고 그를 찍어주는 것은 어느새 나의 작은 행복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일이다. 어느 가을날, 박스를 나르다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물류센터로 출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게 벌써 2년이 지났다. 그 동안 핸드폰도 두 번이나 바꾸면서 수십장이나 되던 그의 사진은 전부 소실되었다. 그때 나에게는 그의 사진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나보다.
어제 오랜만에 나의 출근길을 걸어갔었다. 아울렛으로 운동화를 사러 가기 위해서였다. 자전거도 이젠 없고 날씨가 선선해서 걷고 싶어졌다.
개울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물고기들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느티나무는 조금 지쳐보였다.
2년동안 발길을 아예 끊은 건 아니었어서 그가 사라진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간건지는 알 수 없다. 십중 팔구 누군가가 쓰레기 치우듯 갖다 버렸겠지만 어느 마음씨 착한 소녀가 그를 데리고 갔을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가 있던 곳에는 이제 빌라단지가 들어선다고 한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돌아오면서 올려다 본 파란 여름하늘에는 솜처럼 하얗고 몽글몽글한 구름 하나가 기분좋게 떠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