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에세이

by 참새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오겠습니다."

78번 버스기사님이 갑자기 버스를 세웠다.
모든 승객들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잘만 가던 퇴근길 버스가 갑자기 멈춰섰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사님은 밖으로 나가서 기지개부터 쭈욱 폈다. 다리가 굳었는지 몇번 앉았다 일어나기도 했다. 엉덩이도 한번 털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의 길가였다. 무성히 자란 벼 위로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살면서 버스가 갑자기 멈춘건 처음이었어서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하루에도 몇십번씩 같은 노선을 돌아야하는 버스가 어쩌다 궤도를 이탈하게 되었을까. 뭐 사람 사는 게 다 그럴테지만, 단순히 담배를 태우고 싶은 기사님의 일탈일 수도 있겠고 늘 쉽게 지나쳤던 한적한 바깥풍경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버스는 금방 다시 운행될거였다. 그저 승객들은 오늘 기사님이 좀 힘드신가보다며 불평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시동이 꺼진 버스는 왠지 모르게 아늑하게 느껴졌다. 곧 누군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뒤에서는 학생들이 뭐가 그리 재밋는지 키득키득거렸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찰나였다.
"나도 좀 펴야겄다."
한 아저씨가 못참겠는지 밖으로 뛰쳐나가 기사님 옆에 섰다. 그리고는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고 씨익 웃어보였다.
창가에서는 헤드셋을 낀 여자가 노을이 참 예쁘다고 작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