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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힐 때 찾은 출구가 저술

크로의 과학사냥을 내기까지

by 정연섭


2016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우울한 맘을 삭히려 세종시 국립도서관에 들렸다. 젊을 때라면 산이나 여행을 가겠지만 오십 중 반까지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 저였기에 하루 이틀 정도 도서관에 머물고 싶었다. 2016년은 탄핵정국으로 선망의 국가지도자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기였기에 저의 아픔을 말하기도 사실 부끄럽다.


세종도서관의 전망 좋은 위치에 과학기술 우수도서만을 모아 둔 서재가 있었다. 교양과학, 수학, 물리, 화학 등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한 권 한 권씩 뽑아 가면 이틀 동안 읽었다. 하루 종일 서재 곁이 있으니 이튿날에는 편안한 의자도 가져다 놓아주었다. 국민학교 동창이, 혹은 대학교 친구들이 쓴 책도 있었다. 흥미로왔지만 이 정도의 글은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자만심이 생겼다. 2016년 목표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퇴직 후에 저술활동을 하겠다고 장기 계획을 세워둔 터지만 갑자기 책을 써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2017년을 저술활동을 하지 않으며 2016년 실패를 곱씹으며 세월을 허비할 것만 같았다.


저는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기본에서부터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집착 때문에 시작은 느리지만 나중은 빠른 성취능력을 보입니다. 덕분에 대학교 석사를 마칠 쯤에는 화학을 이론적으로 다 이해할 수가 있겠더라고요. 향토 장학금을 받는 처지이니 직장을 구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론은 충분히 배웠으니 실생활에 화학을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에 LG화학 연구소로 들어갔습니다. 8년의 실전 경험을 쌓고 또 직장을 옮겨 개인사업도 했지요. 암튼 많은 과학기술분야를 섭렵했습니다.

과학기술 교양서적을 쓰기로 했습니다. 저처럼 과학기술 경험이 다양한 사람이 없거든요.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이동하여 한반도까지 오면서 과학기술 발전사를 기술하고자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변화시켜가면 과학기술사를 저술하려니 이야기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질, 천문, 전기, 전자, 계측, 기계, 원자력, 전산의 핵심 개념 110개를 뽑아 역사 소설을 전개했지요. 대신에 장소 이동은 하지 못하고 통시적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주인공은 크로마뇽인인 크로고, 아내는 네안입니다. 자식은 단군인데 우여곡절 끝에 단군은 한반도로 내려오게 됩니다.


110개 소재를 대충 엮어 출판사로 보냈습니다. 인터넷 검색은 원고를 다 쓰기 전에 출판사 기획을 받으라는 충고를 본 적이 있거든요. 중견 작가에게 하는 이야기 같은데 신진 작가인 저가 잘못 이해하고 막무가내로 보냈습니다. 답변이 거의 없었고 한 출판사에서 내용이 참신하다며 만나자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 출판사의 한 분이 과학기술자인데 서술 방식이 참신하다면 저에게 호의적이었죠. 시큰둥한 다른 편집자들은 그래도 내색은 하지 않고 자기 출판사에서 발행된 교양서적을 주며 다시 개정하여 보내라는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사실 원고 초안은 저가 보기에도 퇴고할 부분이 많았거든요. 주제의 연결, 어휘의 선택, 문장의 연결 등 계속 고칠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데 출판사의 충고는 퇴고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달 정도 퇴고 후에 그 출판사에 보냈더니 2주 넘게 고심하더니 결국 출판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죠. 사실 저가 글을 썼고, 사위가 삽화를 그리고, 딸이 책을 편집하여 직접 출판 유혹도 있었지만 출판 퇴짜를 받으니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 동네에 청소년 대상 과학책을 쓰는 유명한 저자가 있는데 그분의 경험담도 들었습니다. 그분이 이 브런치를 추천하더라고요. 책을 출판하기 이전에 브런치에 글을 올려 반응을 보라고. 저는 바로 출판할정이므로 브런치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책을 출판하고 브런치에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답변이 없는 곳도 있지만 긍정적인 답을 주기도 했습니다. 투고 기간 지속적으로 글을 다듬었고요. 9월에 공동기획으로 좋은땅에서 출간했습니다. 가족이 참여한 책이 되었는데 좋은땅에서는 책 내용은 괜찮은데 급하게 출간하려 하느냐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고요.


고3 학생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글을 썼는데 좋은 땅에서는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더라고요. 이야기 형식으로 과학 발전사를 이끌어 가고 과학현상을 비유로 설명하기 때문에 초중고등학생이 읽어 낼 수는 있습니다. 저의 조카들도 읽고 내에게 질문을 하더라고요. 이야기로 보면 흥미를 가지고 읽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과학기술의 핵심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있으니 가벼운 내용의 책은 아닙니다.


발간된 지 한 달 되었습니다.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아는 분들에게 부담이 될 듯하여 조용히 홍보하고 있습니다. 책 발간 전까지 Facebook에서만 활동했는데 발간 이후 10년 이상 방치되었던 블로그 활동을 재개했고요. 트윗도 다시 열었습니다. 이 브린치에서 글을 쓰는 이유도 비슷하지요. 물론 후속 책을 위해서도 글은 열심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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