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길들이기
저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Tensorflow 등과 같은 인공지능 언어로 로봇을 만들지는 않지만 사전 작업을 하고 있다. 인류가 발견한 수학, 과학기술, 철학, 윤리를 이 로봇에 이식을 해야 한다. 이때 조심할 점은 참인 진리만을 입력해야 한다. 그렇지만 않으면 로봇이 참과 거짓의 갈림길에서 헤매다가 미쳐버릴 수가 있다. 자연과학 사실들은 역사적으로 수정된 적이 있지만 한 시점에서 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동의하는 절대적 진리로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어떤 주장들은 참과 거짓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현대철학에서 검증되지 않는 명제를 연구범위에서 배재하거나, 참 거짓을 명확하기 구분하기 위한 분석철학이 유행하는 이유도 철학의 실용성을 확실히 하기 위한 노력이다.
냉정히 생각하여 보면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활동이지만 지식만을 추구하는 학문은 아니다. 중학교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도덕 시간에 든 사람, 난사람, 된 사람이라는 구분을 배운 적이 있다. 철학의 영역을 참 잘 표현한 용어라고 생각되어 누구의 창작인지 알고 싶었으나 검색으로 알 수는 없었다. 든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므로 과학기술 지식을 보유한 사람일 수 있다. 그렇지만 지식이 많다고 올바른 판단을 하며, 학위를 가졌다고 이웃을 돕지 않는다. 드높인 과학지식으로 인류는 전쟁을 일으키고,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머리에 든 지식이 올바른 실천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래서 든 사람보다 된 사람을 우리는 존경한다.
베르그송이 철학을 시작한 동기가 과학기술의 날뛰는 이성을 잠재우고 싶었다. 고삐 풀인 야생마처럼 광분하는 과학기술의 확장을 제지하고자 하였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언급하였고 지성과 직관의 차이를 현학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런 구분도 없이 사유된 전통 철학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그럴 듯 하지만 과학적 진리에서 보면 엉터리이고 내가 그 이유를 자세히 쓰고 싶지도 않다. 그럴듯한 과학지식을 반박하기 위해서 엄밀성을 요하는데 이 글의 범위를 넘어가기도 하거니와, 지금 베르그송이 깨어나서 반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베르그송은 든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철학의 방향은 적절하였다. 세상은 차가운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따뜻한 감성과 공감도 요구된다. 함께 살아가는 협동 능력도 필요하다. 베르그송은 난사람이고 된 사람이다. 노벨상에서 알 수 있듯이 멋있는 글을 썼고 노벨 수상자로 살기보다는 일반 시민으로 살았다. 그의 동양의 사상과 유사한 면도 있는 듯하다. 다만 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든 사람의 행세를 너무 하였다.
로봇에는 베르그송의 사상이 반영된다. 로봇은 인식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하는 3단계의 모듈로 구상되어 있으며 베르그송의 철학은 목표 설정과 행동단계에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