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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섭 Aug 19. 2018

고향 다녀오기

이순신 장군 생각을 따라  

강아지 감자는 짐을 꾸리기만 하면 혼자 남겨두지 말라며 가방 속으로 먼저 들어간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뀐 탓이다. 새로운 여행지에서는 강아지의 대소변이 문제인데 고향 어머니에게는 도둑을 지키는 능력이 문제이다. 고향에만 들린다면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데 중간에 머물 숙소가 장애물이다. 감자를 떼어놓고 나오려면 제법 실랑이를 해야 한다. 동생 밤비는 개 간식 하나 던져주면 우리가 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에 감자는 자기 간식을 밤비가 낚아채 가더라도 거들떠보지 않고 가방 속으로 파고든다.



거제도가 고향이다. 지금은 조선 경기가 나빠 빈방이 많지만 80년 초반에 우리 마을은 가축우리를 개조하여 세를 놓았다. 경북 상주에서 내려온 부부가 우리 집에 살았는데 자기들은 대우가족이 아니라 대우가축이라고 수곤거렸다. 소를 판 등록금, 대우가축의 보태준 월세로 하숙비를 대고 대학을 졸업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집마저 팔아버렸다.



80이 넘으신 어머니가 벌초를 가지며 나를 재촉했다. 올해는 벌초할 사람이 없단다. 먼 곳에 산다며 매번 빠지는 아들이 괘심 했던 탓도 있으리라. 겨울에는 나무를 하려, 여름에는 소 먹이려 뻔질나게 오르내리던 뒷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가 있다. 어릴 적엔 차가 마을 어귀로 진입하면 궁금하여 내다보곤 했는데 지금의 골목길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커녕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젠 남의 집이 된 마당에는 길쭉한 잡초만 자랐고, 뒷산으로 오르는 길목에도 장대 같은 풀들이 우거졌다. 뒤따르는 아내와 어머니를 위해 낫으로 풀을 치며 나아갔다. 잠시 후 산속으로 접어들자 오히려 걷기는 쉬웠다. 편백나무가 쭉쭉 뻗어 있어 관목이나 풀이 자리지 못한 탓이다.  


산등성에 앉은 산소에는 억새가 무성했다. 서울 형님은 뫼등만 살펴보고 내려가라고 하는데 어머니는 다 베라고 하신다. 한번 들판으로 나가면 마무리를 해야 들어오는 농부의 근성이 연세가 드셨지만 아직도 배어있기 때문이다. 예초기 없이 낫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벨 자신이 없었다. 찔레를 먼저 쳐내고, 봉분의 풀만 잘랐다. 몇 년 전에 없었던 찔레가 많다며 할아버지 무덤이 맞는지 어머니는 묻는다. 많은 세월이 흘렸지만 지게를 받쳐두고 쉬던 곳이니 엉덩이가 기억하고 있다. 덜썩 주저앉으니 편안하다.   


 

어릴 적 할머니가 일 나간 부모님 대신 우리를 거의 키워 주셨고 맛있는 과자라도 있으면 아꼈다 나눠주곤 했다. 그 사랑을 기억한다면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엄살을 부릴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풀을 싹싹 베고 밑동을 짧게 깎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팔이 쑤시고 목이 아프다. 이러다가 남편 잡겠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아내가 끼어든다. 어제 주문했던 냉장고가 오전 정각에 배달되니 내려가야 한단다. 그제야 어머니도 못 이긴 체 따라 내려간다. 다시는 산소에 올 일이 없을 듯하다며, 새 냉장고에 돈 쓸 필요 없다고 하더니 그래도 막상 냉장고가 들어오니 기뻐하신다.



올해 가뭄과 폭염으로 고추가 흉작이라는 소식을 사돈으로부터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가 소일거리로 고추 모종 40포기를 심었는데 빨간 고추를 제법 땄다고 했다. 말린 고추 가져가라는 어머니와 실랑이하는 아내를 재촉하여 거제를 떠났다. 회사가 마련하고 운 좋게 당첨된 하계수련장이 있는 완주로 향했다. 온천에 몸만 담가도 본전을 뽑는다는 경험자의 귀띔에, 큰 기대를 접고 늦게 체크인하기로 했다. 내비를 켜고 경유지로  남해 다랭이 마을을 입력했다.


귀향길과 다른 길을 타니 이순신 장군의 재건로를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후에 곡성 보성 등을 돌면서 사람을 모으고 군량미를 확보했다. 조정에서는 수군을 해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12척으로 배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임진왜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현재 우리의 지방도 신음하고 있다. 아이들을 볼 수 없고 조금 비탈진 논밭에는 풀들이 우거져 있다. 힘과 사람이 대도시로 향하 있다. 지방을 살릴 재건로는 무엇일까?  


고성을 경유하여 삼천포대교를 지났다. 여유가 있을 때에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타는 이유가 우리의 마을들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기대가 줄어들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초가집은 운치가 있었지만 산업화 이후 콘크리트와  컨테이너 건물로 범벅된 현대의 농촌 풍경은 최악이다. 우리나라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래도 남해로 들어서면 집과 마을이 해안선 따라 아름답다. 지중 못지않다. 눈에 띄는 아무 카페에 들려 2천 원짜리 커피를 맛보는데 5천 원짜리 급이다. 다랭이 마을로 간다는 소리에 어느 여배우가 올려놓은 비싼 논밖에 볼 것 없다면서 독일인 마을을 추천한다.

      


독일인 마을에서는 전체 가구가 앞길을 개방하여 원예예술촌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마을길을 따라 걸으며 마당과 집을 구경할 수 있다. 유학으로 서양 지식을 배운 지식인들은 대체로 폐쇄적이지만, 파견으로 서양 문화를 접한 노동자들은 대체로 개방적이다. 기념품 가게의 주인과 몇 마디 나누면서 느낀 잠정 결론이다. 남도의 인심과 예술적 감각도 개방성에 한몫 했겠지만 도심의 부족한 환경속에서도 개방적 문화를  대전에도 전파하고 싶다. 반석천에도 자연, 조화, 개방, 자율의 씨를 뿌리고 싶다.  



다랭이 마을은 해변에서 산 중턱까지 좁고 긴 논마지기가 가파른 계단을 이룬다. 어릴 적 식량 자립을 위해 우리 집도 산비탈에 논을 일구었다, 돌을 골라내고 논두렁을 만드는 일도 힘들지만 가장 어려운 장애물은 물이었다. 벼농사는 물 농사이다.  높은 산에서 발원하는 다랭이 마을 도랑물은 마르지 않을 듯했지만 올여름 가뭄에는 논들이 바짝바짝 타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물 대기가 어려워 벼농사를 포기하고 잡초만 무성한 논들도 즐비했다. 출발할 때 비가 내리기에 다행이라고 하니 한 농민이 한참 부족하다고 한다.


남해안은 옛날부터 왜적이 자주 침입했던 지역이다. 거제도 역사를 보면 왜구 출몰로 주민들이 내륙 근처로 이주되기도 했다. 지금은 2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지만 조선 산업이 붕괴되며 활력을 잃어버려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두렵다. 국토를 지키는 방법에는 접경지역에서 군인의 의무 국방이 있지만, 국경지역에서 지역 주민의 생활 국방도 있다. 도시에서 한계 효용이 낮은 정책으로 씨름하기보다는 지방에서 한계효용이 큰 정책으로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 생산 주체도 아닌 공무원 수를 늘이기보다는 지방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주민을 준공무원으로 대접하고 싶다. 사람도 예산도 지방으로 흘려보내 아이들의 울움소리가 퍼지도록 해야 한다. 자동차 엑셀에 오른발 올려놓고 생각하는 사이에 감성가도의 저녁노을이 우리를 반겨준다.



아침에 유황탕과 장수탕에 교대로 몸을 담그니 거제에서 벌초하느라 몽긴 팔이 풀어진다. 휴대폰에는 폭염주의보 메시지가 수시로 날아들고 차를 내릴 때마다 열이 피부를 파고들지만 온천 덕분인지 끈적거리지는 않는다. 고속도로로 이동하면 대전까지 한 시간 거지만 지방 재건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다시 국도를 탔다. 성수기가 지난 탓인지 완산군이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다는 소양 대승한지 기념관도 조용하다. 기념관에는 닥나무를 채취하여 한지를 만드는 화학반응과 물리 작용의 전 과정을 한지로 빚었는데 화학자인 내가 보아도 뛰어나다.  



텅 빈 집들과 무성한 잡초로 덮인 논밭은 이제는 익숙한 농촌 풍경이다. 간혹 유모차를 밀고 가는 할머니와 더운 도로 위를 달리는 신식 할아버지를 통해 시골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짐작은 갔다. 계곡마다 버려진 쓰레기가 이번 여름이 시끌벅적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쓰레기도 계곡물을 따라 내려가고 내년 여름에 우리는 이 계곡을 다시 찾을 것이다. 인명구조요원들이 장비를 철거하는 언덕길 따라 데이트하는 젊은 연인들의 목소리가 쾌활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 딸이라면 쓰레기 대신에 으로 깔아 주고 싶었다.     


오랜 가뭄으로 대아호의 수위는 낮아 보였다. 잠시 멈춰 사진을 찍었다. 낚시금지 경고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는데 식당에는 매운탕을 팔고 있었다. 지역주민에게만 허락된 장소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따질 여유가 없었다. 대전에 도착하기 전에 지방을 살릴 아이디어가 급박했기 때문이다.  안영 IC를 지나면서 정리했다. 주택을 개량하고 경작이 쉽도록 논밭 정리하는 일이 당장 시행해야 할 정책이 아닐까?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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