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불균형 해소
태풍 솔릭이 지나갔다. 담 위에 놓았던 화분을 내리고, 햇빛을 가리던 차양을 걷고, 방치된 생활용품을 창고로 들이는 등 대비를 했는데 땅만 적시고 사라졌다. 제주도를 천천히 지나면서 심층 바다에 에너지를 잃어 세력이 약해졌다는 해설을 들었다. 여름 내내 건조했던 한반도의 대기층이 태풍의 회전날개를 건조시킬 가능성이 더 높은 듯 했지만 좀 두고 봐야 하겠다.
어릴 적 고향 거제에는 태풍이 자주 지나갔다. 밤새 바람이 세고 비를 쏟은 아침에 아버지를 따라 들로 나가면 계곡에서 쏟아져 내려와 벼논을 덮은 자갈 무더기, 무너진 논두렁, 바람에 한 맘으로 누워버린 벼포기에 할 말을 잃곤 했다. 지금 살고 있는 대전은 태풍이나 홍수가 거의 없지만 솔릭의 핥긴 흔적을 찾아 반석천을 따라 걸었다. 물살에 일부 강바닥이 약간 파였지만 피해보다는 마르던 잔디가 살아나고 주변 논에는 벼이삭이 살찌고 있었다. 지역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충남지역에서는 솔빅이 가뭄을 해소시킨 고마운 태풍이었다.
적도에서 데워진 공기를 북극으로 보내는 정상적인 순환은 대기의 대류이다. 사시사철 작동하는 편서풍과 무역풍이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공기 대류만으로는 부족하여 비정상적인 과도 상태가 일어난다. 태풍이다. 대류가 잔잔한 정상 흐름이라면 태풍은 급격한 과도 흐름이다. 지구의 에너지 불균형 해소는 사람 개입이 없는 현상인데도 에너지 평형을 위해 태풍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자연세계뿐만 아니라 인간세상에도 정상적인 개선이 필요하지만 불균형이 심해지면 혁신이 필요하다.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는 권력, 부, 지식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결국에는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추구하는 3권 분립 민주주의 제도를 낳았다. 혁명 덕분에 제도는 보완이 되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게 변화되지 않은 듯하다. 우리는 여전히 편견에 잡혀 있다. 무한한 신에 비하며 유한자 존재인 인간은 죄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지만, 철학사 속에 만난 모든 철학자마저도 내 보기에는 편견을 지니고 있으니 우리 범인들이야 무엇하리오?
79년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태풍 주디가 남해안을 핥고 지나갔다. 정부에서 피해 지역 학생들의 학자금을 경감하여 주었다. 저의 부모님도 신청하라고 지시했지만 나는 무시했다. 태풍 이후 복구가 힘들고 피해가 났지만 남의 지원을 받는 태도가 내키지 않았고 숫기도 없었다. 노력하지만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는 수용하고 힘들지만 다시 일어나자. 뭐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한 듯하다. 나이 50이 넘은 지금 저도 순수함을 잃어 이미 편성된 정부의 재난 복구비를 받아 내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나의 힘보다도 동료들의 노력임을 알면서도 무리한 목표를 잡고 협력 업체를 닦달한다.
자신 주변에 갈등과 불만이 많은가요? 부정적으로 보면 자신이 불균형의 발원지가 될 수 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자신이 불평등 해소를 위한 경로일 수도 있다.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불균형을 없앨 수 없듯이 인간세상에서도 갈등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태풍을 막지만 않아도 대단한 수용적 태도이다.
더 곰곰이 생각하여 보면 태양이 없으면 태풍도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태풍을 막기 위해 태양을 없앨 수는 없다. 햇빛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과학을 전공한 저가 18세기 계몽 철학자와 다른 생각은 평등 외에 발전을 귀하게 여기는 점이다. 과학으로 발전을 먼저 묻고 철학으로 불평등에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