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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섭 Sep 26. 2018

고향에서 추석 보내기

얼마나 베풀고 왔는가?

추석이 다가오면 아내는 음식 준비와 선물 준비로 바쁘다. 고향 거제와 처가 식구가 모이는 진천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친척 일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조카들에게 줄 용돈만 찾아 놓고 가자는 신호가 떨어지면 선물 보따리를 차에 옮기면 나의 역할은 끝난다. 사실은 고향 방구석에 처박혀 페북질 할 충전기도 내가 챙기는 한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니 정체되는 구간이 간혹 있었지만 대진고속도로는 빨랐다. 거제대교에 도착했을 때 저녁까지는 서너 시간이 남았다. 평소에는 해안도로를 따라 자연풍경을 즐기거나 고현 시장에 들러 팔닥거리는 생선을 곤 했었다. 이번에는 좀 색다른 경험이 없을까? 문득 두 분의 대통령을 배출한 거제이니 아내와 딸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차는 성포를 지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생가가 거제 읍내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피난민으로 거제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산으로 이사한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이다. 6.25 사변 당시 거제도 전체가 포로수용소였고 피난촌이고 공동묘지였다. 아내에게 부탁하여 내비를 검색하니 생가를 안내한다.


  

 

우리나라 농촌 마을은 대개 산기슭에 자리 잡고 들판을 내다보는데 문대통령 마을은 들판 한가운데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들어가는데 길 옆의 코스모스가 반겨준다. 이웃이래야 서너 가구뿐인 조그만 마을이다. 익어가는 벼 들판 너머로 거제만이 보인다. 고즉넉한 가을 분위기에 한 가족 또 한 가족 방문객들도  이어진다. 헛간은 방치되어 있고 본채만 조금 정돈되어 있다. 지대를 돋우지 않아 홍수라도 나면 물에 잠길 듯하다. 피난시절 물 빠짐이 좋은 산기슭에는 먼저 차지한 거제 주민이 살고 있을 테니 밀려 밀려 여기까지 온 듯하다. 어린 시절의 어려움은 성인 되었을 때 지혜된다는 저의 편견이 있는 터라 문대통령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김영상 대통령 생가는 대계에 있다. 가는 길에 옥포를 지났다. 어릴 적 나는 지게를 지고 고개 넘어 옥포에 가곤 했다. 친구들이랑 땔감을 팔아 학용품이나 생선을 바꾸었고, 간혹 무리에서 이탈한 우리 동네 소를 잡아 오곤 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방문 소식에 태극기를 들고 길가에서 하염없이 기다린 적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보를 올린 해안이기도 하다. 탁상공론으로 세월을 허비하는 조선에 앞날을 내다보면 준비했던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우리 역사가 쪽팔리지 않는다.

 


어장을 소유한 아버지 덕분에 김영상 대통령은 부유하게 자랐던 모양이다. 중학교 때부터 대통령을 꿈꾸었다는 그의 고백을 듣고 나는 건방지다고 비난했지만 그의 민주투쟁과 실명제에 뿌듯해 했었다.

     


우리 대통령은 퇴임 후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가 대통령을 거들떠보지 않가봐 우려했는데 그래도 대권을 꿈꾸는 정치가들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얄팍한 계산으로 따지면 대통령은 밑지는 장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권을 노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땅에 이 시대에 자기 몸을 희생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라고 나는 믿고 싶다. 김영상 대통령의 자유나 문재인 대통령의 자주는 패배의식에 젖은 이 땅위에 뿌리내려야 할 귀중한 가치이다. 아름다운 자유와 자주를 말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부끄려워했던가?  IMF가 없었고, 앞으로 경제적 침체가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와 병행하여 올바른 시대정신도 훼손될 수 없다.      



어머님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칠천도 위로 해가 진다. 선조의 공격 명령에 뜸을 들인 이순신이 압송될 때, 대신 칼을 잡은 원균이 이 칠천도에서 일본에 대패하고 사망했다. 우리나라 3대 패전 중에 칠천량 해전이 들어간다. 원칙적으로 뛰어난 임금이 나라를 세워간다. 그러나 동일한 임금 밑이라도 장수에 따라 역사는 바뀔 수가 있다. 바람과 물길과 해까지 고려해던 이순신은 역사의 영웅이 되었지만 무식한 명령만 따랐던 원균은 역사의 수치가 되었다. 지금도 동일한 교훈이 적용된다. 임금을 비난하기 이전에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대통령 생가를 돌아보면서 미래를 꿈꾸지만 부모님이 사는 마당을 밟으면 현실로 돌아온다. 늙은 부모님과 마당에 우거진 잡초가 보인다. 하루의 노력 봉사로 잡초는 제거했지만 생활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이 관심도 추석 때뿐이다. 다시 만날 설날을 기다리는 부모님과 대조적으로 일주일 지나면 나는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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